"낫질해둔 나뭇가지만 보고 가이소, 더워서 어찌 갈까?" 1987년 초여름 온 길을 제대로 찾을수 있을까 걱정하며 배웅 해주던 주민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전기와 전화는 고사하고 외지인은 쉽게 찾을 길조차 없던 곳, 옛날 계수나무로 지은 절이 있었다고 이름 지어진 경북 청송군 안덕면 고아리 桂塘(지땡이)마을은 초가집·코클·갓·도포·장죽·화로·멍석 이 살아 숨쉬던 오지중의 오지 였다.
세월이 이십 년도 훨씬 넘게 지났으니 여행하는 기분으로 횡 하니 다녀 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비게이션에 고아리를 입력 했다. 근처에 닿았지만 길은 번번이 되돌아오고 말았다. 면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했다.
차가 오를 수 있는 구두목골로 간 후 30여분만 걸어가면 된단다 . 그러나 길은 나타나지 않았다.근처 고추밭에서 새참을 먹던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어 안덕면에서 백여리 떨어진 파천면 호박골의 비포장 도로로 방향을 바꾸어 잡았다.
수풀이 밀림을 이룬 곳에 고추가 널려있는 집이 눈에 띄었다. 흙벽과 그을음이 가득한 부엌문, 지게를 걸어둔 시렁 등 모든 것이 옛날 그대로다. 지붕만 초가에서 함석으로 바뀌었다. 멍석을 짜고 있던 할아버지와 갓 쓰고 장죽을 입에 문채 여유로운 웃음을 짓던 어른신들이 금방이라도 돌아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고인이 된 어르신 대신 집을 지키고 있던 이유만(68)씨가 기자를 알아보고 반겨주었다. 이씨는 지금도 칡으로 서까래를 묶은 200백 년 된 집을 보물처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을 대신해 수시로 찾아와 콩을 까먹고 가는 노루와 토끼는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
보도가 나간 후 1988년에 전기가 들어오고 90년에는 비포장이지만 도로가 났다. 덕분에 한 집은 과수원을 하고, 다른 한 집은 주말이나 명절 때 별장처럼 이곳을 이용한다. 2009년 9월에 다시 가본 오지 지땡이 마을은 우리들의 잊혀진 고향을 가슴에 품고 여전히 옛모습 그대로 오롯하게 살아 숨쉬고 있었다.
편집위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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