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그저 갑사에만 다녀오려고 했다. 배낭도 메지 않았고 음료수나 간식도 준비하지 못했다. 그렇게 접어든 발길이 어느새 계룡의 능선을 넘고 있었다.
'춘마곡 추갑사'라 했다. 벚꽃이 아름다운 마곡사의 풍경은 봄에 절정이고, 단풍이 고운 갑사는 가을이 제 맛이라는 말이다. 계룡저수지를 지나 계룡산을 향해 쭉 뻗은 직선도로.
중장초등학교를 스치는 2km 가량의 길 양 옆은 온통 은행나무다. 가을이 깊어지면 이 노란 절정을 지나 갑사에 다다르게 된다. 추갑사의 감동은 이 은행나무 터널에서 시작된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갑사로 오르는 길.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읽은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이 떠올랐다. 그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그때 처음 들은 '시나브로'란 아름다운 우리 말이 깊게 각인됐던 글이다. 글의 작가는 눈 내리는 겨울, 동학사에서 거슬러 올라 남매탑의 지순한 사랑을 이야기하곤 갑사로 발길을 향했다.
갑사에 도착해 사찰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자꾸만 그 수필이 마음을 끌어 당겼다. 오래 전 꼭 한번 걸어 보리라 했던 그 길이 코앞인데 그냥 되돌아가기가 아쉬웠다. 언제 또 계룡을 찾을까 싶어 내친 김에 성큼 산길로 발을 내디뎠다. 수필과는 반대로 '갑사에서 가는 길'이다.
갑사를 벗어난 산길은 계곡과 함께 올랐다. 숲길 위로 초록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가는 햇살이 내려앉았다. 이파리와 땅으로 톡톡 소리가 난다.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다.
계속된 숲길. 갑자기 커지는 물소리에 발걸음은 용문폭포 앞에서 깜짝 놀라 멈춰 섰다.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수보다 그 앞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올라 앉아 합장을 하고 있는 젊은 여인 때문이다.
계룡의 기를 받으러 온 여인인가. 흠칫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도를 닦는 여인을 방해하지 않으려 살금살금 비켜 올랐다. 시선은 자꾸 그쪽을 향했지만 가부좌를 튼 여인은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행에만 집중했다. 도 닦는 여인 때문에 용문폭포의 감상을 놓쳐 버렸다.
숲길이 갑자기 환하게 열렸다. 기암의 봉우리를 병풍 삼아 들어 앉은 신흥암이다. 절집 주변 노송들의 굵은 뒤틀임이 고혹적이다. 나한전 뒤편의 한 바위는 제주 서귀포의 외돌개처럼 불뚝 하늘로 솟았다. 계룡의 또 다른 기가 느껴졌다.
다시 숲길로 접어든 등산로는 계속 급하게 오르더니 마침내 금잔디고개에 이르렀다. 산 능선, 헬기 착륙장이 마련된 무성한 풀밭이다. 이 풀들이 가을이 깊어지면 황금색으로 젖어들기에 이런 예쁜 이름을 얻었을 것이다.
동학사까지는 2.4km다. 절반쯤 온 것 같다. 가까운 곳에 식수대가 있어 준비 없이 시작한 산행의 고통스러운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능선길이다.
삼불봉삼거리에 도착하니 삼불봉(775m) 정상까지 200m란 팻말이 붙어 있다. 바로 남매탑으로 내려갈까, 삼불봉을 다녀올까 고민하는데 봉우리서 내려오던 산행객 한 분이 "안 올라가면 후회할 것"이라며 등을 떠밀었다.
가파른 철 계단을 팍팍해진 허벅지를 두들기며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시야가 환해졌다. 계룡이 보였다. 주봉인 천황봉(845m)을 비롯, 쌀개봉(828m) 관음봉(616m) 연천봉(740m) 등 봉우리들이 가파른 능선으로 이어졌다.
관음봉와 삼불봉을 잇는 자연성릉의 암릉 줄기는 꼭 용의 등뼈를 빼닮았다. 양 옆은 천길 벼랑. 그 아득함이 능선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다.
계룡산을 설명하는 많은 글들이 '닭 벼슬을 한 용의 모습'이란 싼 티 나는 표현을 쓰고 있다. 계룡이란 조선 초 무학대사가 이 산세를 보고 '금계포란(金鷄抱卵)형이요, 비룡승천(飛龍昇天)형이라'해서 붙여진 이름인 것을…. 이 멋진 풍광을 어떻게 '닭 머리의 용'이라고 함부로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닭과 용이 웃을 일이다.
잠자리와 벌이 잉잉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푸른 하늘은 더 높이 올라가 있었다. 분명 가을 하늘이었다. 몸은 땀으로 푹 젖었지만 기분이 좋다. 산행의 기쁨이 바로 이건가 보다. 기분 좋게 땀을 흘릴 수 있다는 것.
삼불봉 삼거리부터는 계속 내리막이다. 잘 다져진 돌계단이라 걸음은 어렵지 않다. 아래에서 불경 소리가 퍼져 올랐다. 상원암 암자 옆에 남매탑이 자리했다.
한 수도승이 목에 뼈다귀가 걸린 호랑이를 구해 줬다. 호랑이는 보은의 의미로 젊은 처녀를 물어다 놓고 갔다. 수도승의 불심에 감화를 받은 처녀는 떠나지 않으려 했고, 결국 둘은 의남매를 맺고 구도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이들이 입적한 뒤 석탑 2기가 세워졌다. 지순한 사랑을 담은 석탑이다. 탑 아래에 서면 남매탑과 삼불봉의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남매탑에서 동학사까지는 1.7km. 내리막의 오솔길이 초록의 숲 한가운데를 지난다. 동학사 입구에서 동학사계곡을 만났다. 지금까지의 계곡과 달리 물이 차고 넘쳤다. 아름드리 나무의 초록 그늘과 어우러진 맑은 물이 큰 소를 이뤘다. 동학사 계곡의 신록은 동학8경에 드는 절경이라고 한다.
동학사 쪽에서 산행을 시작했다면 아마도 이 계곡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동학사 계곡의 아름다운 그늘의 유혹은 그처럼 쉽게 떨치기 힘들었다. 동학사계곡에도 시나브로 말간 가을이 젖어들고 있었다.
글ㆍ사진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 동학사와 갑사는…
계룡산에는 동학사와 갑사가 동서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동학사는 724년 상원 스님이 조그만 암자를 지은 것을 그의 제자인 회의 스님이 스승의 사리탑을 세우고 절을 지어 상원사라 했던 곳이다.
신라가 망한 뒤 937년 대승관 유차달이 이곳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의 초혼제를 지낼 때 동계사를 건축했고 참선 승려들이 몰려들며 사찰이 커지게 된 후 동학사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현재는 승가대를 중심으로 한 비구니 수행 사찰이다.
갑사는 백제 때인 420년 고구려에서 온 아도 승려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고찰답게 경내에는 보물이 네 점이 있다.
선조 2년(1569)에 새긴 월인석보 판목(보물 582호)과 통일신라 시대 당간으론 유일하게 남아 있는 철당간(보물 256호), 고려 때 만들어진 갑사 부도(보물 257호), 조선 선조 17년에 만든 동종(보물 478호) 등이다.
절을 창건할 당시 짐을 나르던 소가 냇물에서 기절해 죽자 소의 공을 치하해 세웠다는 공우탑, 요사채 담장을 뚫어 만든 통로, 구한말 윤덕영의 별장이었던 사찰 바로 옆의 전통 찻집 등도 함께 둘러볼 만한 곳들이다. 공주= 글ㆍ사진 이성원기자
■ 여행수첩
공주시는 최근 잇따라 뚫린 고속도로로 이젠 교통의 요충지로 부각되고 있다. 천안_논산고속도로와 함께 대전_당진고속도로, 공주_서천고속도로 등 3개의 고속도로가 공주 땅을 지난다.
수도권에서 이동할 때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천안JC에서 천안_논산고속도로 갈아타고는 정안IC나 남공주IC에서 빠져 나온다.
23번 국도를 타고 가다 계룡에서 갑사 방면 지방도를 타고 갑사 방향 표지판을 따르면 된다. 등산을 하려면 갑사나 마곡사 사찰 이용료를 내야 한다. 2,000원. 갑사 주차장 사용료는 4,000원. 공주시 관광안내소 (041)840_2548
차를 두고 갑사에서 동학사로 산행을 해 넘어갈 경우 동학사 입구에서 갑사까지 다니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하루 7회 왕복 운행한다. 동학사에서 갑사까지 호출택시를 이용할 경우 산을 크게 둘러 가는 길이라 요금이 비싸다. 2만3,000원. (042)825_1818
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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