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충남 서천의 한 도로에서 박모(66) 할머니가 도로를 건너다 달려오는 승용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김모(48)씨. 김씨는 치료비 명목 등으로 나온 보험금으로 사고를 수습했다.
경찰도 단순 과실에 따른 교통사고로 보고 김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평범한 교통사고로 지나갈 법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뒤에 도사린 김씨의 악랄한 '계산'을 캐낸 것은 다름 아닌 보험회사의 보험사기 조사팀(SIU Special Investigation Unit) 요원들이었다.
SIU 요원의 조사망에 포착된 이상 징후는 김씨가 이전에도 유사한 사고를 내 보험금을 타냈다는 점. 보험연구원의 사고경력조회시스템(ICPS) 등을 통해 김씨가 2007년 5월 충남 보령의 한적한 도로에서 김모(74) 할머니를 치어 숨지게 했고, 2008년 3월에는 서천의 한 도로에서 또 다른 할머니를 쳐 전치 8주의 중상을 입힌 사실이 파악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피해자들은 모두 나이 많은 노인들이었다.
결정적인 단서는 보험협회 등을 통한 김씨의 보험금 수령액 조사에서 잡혔다. 김씨가 3건의 사고를 통해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치료비 명목의 보험금과는 별도로, 합의금 명목 등으로 무려 1억 2,000만원을 따로 받았던 것이다.
피해자들이 고령이어서 김씨는 이중 2,100만원만 합의금으로 지급했다. 결국 김씨는 교통 사고를 내 2명을 숨지게 하고도 오히려 1억원 가량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이는 김씨가 '방어비용담보'가 포함된 운전자보험을 3군데나 들고 있었기 때문. '방어비용담보'란 운전자가 과실 사고를 냈을 때, 일반 자동차보험에선 지급되지 않는 ▲벌금 ▲법률방어비용 ▲형사합의지원금 ▲면허취소위로금 등을 별도 지급하는 상품이다.
특히 여러 보험회사에 가입하더라도 약정금액을 중복 지급받을 수 있다. 김씨 사건을 조사했던 이석환 삼성화재 SIU 조사실장은 "김씨는 보험상품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다"며 "고의로 할머니들만을 노려 사고를 낸 뒤 합의금을 낮게 주고는 거액의 보험금를 타냈다"고 혀를 찼다. 보험 사기를 통해 사실상 '살인 장사'를 벌인 셈이다.
이처럼 다양해진 보험 종류에 맞춰 혀를 내두를 정도로 교묘하고 악랄해지는 보험사기범을 뒤쫓는 이들이 SIU 요원들이다. 법적으로 수사권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전문성이 요구되는 보험사기 범죄의 '초동수사'를 맡아 범인이 검거될 때까지 경찰을 지원한다.
국내 SIU은 1996년 삼성화재를 시작으로 현대해상(97년) 동부화재(98년) LIG손해보험(2000년) 등에 속속 설치돼 보험사마다 20~60명이 있으며 8월 말 현재 전국적으로 270명 가량이 활약하고 있다.
SIU 요원들은 대부분 전직 경찰관들이다. 오승렬 LIG손해보험 조사실장은 "예전에는 '뺑반'(뺑소니 사건사고 처리반) 출신이 70% 정도였는데, 보험사기가 지능화하면서 요즘은 수사 형사계 출신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들의 역할이 특히 중요한 것은 보험 사기가 갈수록 지능화하는데 반해 경찰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분야라는 점 때문이다. 보험사기는 형법상 사기죄로 비교적 경미한 범죄에 해당돼, 대형 사건으로 실적을 올려야 하는 경찰로서는 큰 매력이 없다.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10대들의 보험사기도 사정은 마찬가지. 힘들게 붙잡아봐야 대부분 불구속 입건에 그칠 사안이어서 경찰로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 사건인데, SIU 요원의 활약으로 10대 보험사기범들이 잇따라 잡혔다.
최근 적발된 서울 강서 지역 10대 보험사기단 사건도 SIU의 작품이다. 조사의뢰가 온 것은 2007년 6월. 서울 강서지역에서 고등학생들이 비슷한 교통사고로 보험금을 타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제보였다.
요원들은 '사고경력조회시스템'(ICPS)에 보험금을 탄 학생들을 입력해 동승자를 찾고, 그 동승자를 다시 ICPS에 입력해 또 관계자를 색출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해 이들이 주로 같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그 규모도 200명에 가깝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SIU는 이 자료를 경찰에 넘겨 수사가 본격 진행됐다. 이석환 실장은 "예전 10대 보험사기는 선배의 지시를 받는 식이었는데, 요즘엔 10대 스스로 사건을 꾸밀 정도"며 "처벌이 가볍다 보니 별다른 죄의식 없이 놀이처럼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오승렬(48) LIG손해보험 조사실장도 "지난달 사형을 선고 받은 강호순도 보험사기 범죄에서 출발했다"며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방화, 살인 등을 일삼고 가족을 대상으로 한 패륜 범죄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뺑소니 수사관(11년 경력) 출신인 유제직(43) 동부화재 조사실장 보험 범죄 기승의 원인으로 '병원'과 '업체'(자동차수리점 도색업체 등)를 지목했다. 유 실장은 "요즘 동네 병?사무장의 능력은 교통사고 환자를 얼마나 끌어오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분위기여서 보험사기를 부추기고 있다"며 "도색업체들도 인터넷에 버젓이 광고를 내 보험사기 수법을 전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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