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인간의 동경과 도전, 이카로스(Icarus)의 후예 패러글라이더들이 울긋불긋한 날개를 달고 창공을 가른다. 날갯짓을 하지 않고도 하루에 9만리를 날아간다는 대붕(大鵬)인양 그들은 고요하게 날아올랐다. 부딪힐 듯 교차하고, 때로는 하늘로 솟구치면서 기량을 뽐냈다.
패러글라이딩 초보자에게 이륙만큼 긴장된 순간이 또 있을까. 탯줄이 끊기는 불안함에 견줄 만했다. 그러나 탯줄을 끊지 않고는 새로운 세상에 온전히 나올 수 없는 법. 언제까지나 발 밑을 든든하게 받쳐줄 것이라 믿었던 땅이 꺼지듯 멀어지면서 하늘과 땅 사이에 내동댕이쳐졌다. 너비 15m 날개에 매달린 채 기자는 하늘로 비상했다.
7일 기자는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위해 충북 단양군 가곡면 두산활공장을 찾았다. 소백산(해발 1,439m)이 악수를 하듯 북동쪽으로 손을 내민 곳, 마을 사람들이 봉오등 혹은 봉화봉이라고 부르는 약 700m 고지의 7, 8부 능선에 자리한 곳이다. 동쪽으로는 태백산맥, 남쪽으로는 소백산맥에 둘러싸여 거센 해풍이 범하지 못하는 덕분에 패러글라이딩 천혜의 요지다. "순풍은 있으되 태풍은 없는 곳"이라고 1991년 손수 이곳을 만든 안영호 단심무궁 패러글라이딩클럽 회장은 자랑했다.
지름 60m의 원형 이륙장에 서자 탁 트인 전방 시야에 가슴까지 시원하다. 서쪽에서 북쪽을 향해 뻗은 금수산(해발 1,015m) 자락까지 15㎞ 안쪽으로는 거칠 것이 없다. 야트막한 야산들을 피해 불어온 바람은 S자를 그리며 흐르는 남한강에서 속도를 높여 벼랑을 타고 솟구쳐 오른다. 패러글라이더는 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다.
강사와 동승하는 2인승 체험 비행에 앞서 간단한 이론 교육. 패러글라이더는 크게 날개(Canopy), 비행자의 무게를 날개에 고르게 분산시켜 주는 산줄(Suspension lines)과 산줄을 모아 주는 띠 라이저(Riser), 비상 낙하산이 들어 있는 하네스(Harness·안전벨트 겸 안장)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조종은 브레이크 줄을 잡아당겨 한다. 패러글라이딩을 할 때 사람들이 양 손에 쥐고 있는 게 이 줄이다. 날개 맨 뒤쪽을 연결한 이 줄을 당기면 뒷부분이 안쪽으로 오그라들면서 속도가 줄어든다. 오른쪽과 왼쪽이 각각 따로 움직여 우회전할 때는 오른쪽 줄을 당기고, 좌회전할 때는 왼쪽 줄을 당긴다. 착륙할 때는 양쪽 줄을 허리 아래까지 강하게 잡아당겨 저항을 크게 해 내려앉는다.
이론 교육이 끝나고 이륙 연습. 뜨는 힘을 강하게 하려면 날개에 바람을 최대한 담는 것이 관건. 패러글라이더 앞쪽 바람 구멍과 연결된 A라이저(네 개의 라이저 중 하나)를 브레이크 줄과 같이 잡고 이륙하려는 방향으로 열심히 뛴다. 양쪽 팔을 뒤로 뻗어 줄을 끌고 뛰다 보면 날개가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팔은 자연스럽게 만세를 부르는 형태가 된다. 이때 브레이크 줄은 그대로 잡은 채 A라이저만 놓으면서 이륙. 날아가지 않으려면 몸이 뜨려고 할 때 바로 멈춰야 한다. 한 20m를 뛰었을 뿐인데 콧등에 땀이 맺힌다. 이렇게 3번을 뛰고 숨이 턱까지 찬 기자를 보면서 경력 11년차 장한덕(37)씨는 "일 주일만 하면 체중이 4㎏은 빠진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비행에 앞서 안 회장과 회원들이 이륙장 앞자락에 모였다. 이 사람들 바람을 읽는 능력을 가졌는지 고도 500m쯤 되는 맞은편 산을 가리키며 저쪽에는 상승 기류가 있고, 동쪽 계곡으로 가면 바람이 없어 고도를 높일 수 없다는 등 한 마디씩 토해 낸다. 심사숙고 끝에 비행 경로를 정했지만 직접 비행을 해 봐야 바람을 확인할 수 있는 법. 클럽 회원이면서 119단양구조대 구조반장인 황재훈(41)씨가 고맙게도 길라잡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경력 16년차 황씨는 쉬는 날이면 비행을 하러 나온단다. 맞은편 산자락으로 날아간 황씨의 하얀색 패러글라이더가 떠올랐다. 상승 기류, 우물쭈물할 겨를이 없다. 이륙이다.
기자는 동승하기로 한 안 회장의 한 발 앞에서 정말 열심히 뛰었다. 경사로를 지나 발이 허공에 뜬 후에도 배운 대로 발을 허공에서 대여섯 번 젓고 있자 뒤에 있던 안 회장이 말했다. "이제 편하게 앉으세요." 머쓱했다. 땅만 보고 뛰다가 하네스에 앉으니 몸은 벌써 허공에 '붕' 떠 있었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소리를 지르지도, 허둥대지도 않았지만 사실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마음을 가다듬고 풍경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높은 산에 오르더라도 땅을 디딘 채로는 절대 느낄 수 없을 감동이 물밀듯 일었다. 아주 큰 공의 중심에 떠서 공 안쪽의 그림을 감상하는 느낌이랄까.
산에 부딪힌 상승풍을 타고 오르는 릿지(Ridge) 비행으로 고도가 800m에 육박했다. 저 멀리 두산마을을 오르는 고샅이 지렁이마냥 가늘어 보였다. 햇볕이 건물이나 흙바닥을 잘 달궈 상승 기류를 만들어 내면 2,500m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안 회장의 말. 기자는 "날씨가 좋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비행이 슬슬 익숙해질 무렵, 경력 18년차 4,800회 이상의 비행횟수를 자랑하는 안 회장이 기술을 선보였다. 오른쪽 브레이크를 당겨 우회전을 한 것. 안 회장의 지시에 따라 몸의 중심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어어'하는 순간 날개 밑에 있던 기자의 몸이 날개와 같은 높이가 됐다. 산줄을 사이에 두고 날개와 기자의 몸이 빙글빙글 돌면서 고도가 급격히 낮아졌다. 꽉 깨문 어금니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오른쪽 브레이크를 풀어 다시 자세를 잡은 안 회장, 이게 스파이럴(Spiralㆍ나선형 강하 기술)이란다. "위험하기 때문에 살인적 상승풍에서 탈출하거나 뇌우를 만나 급히 착륙할 경우가 아니라면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안 회장이 설명했다. 기자는 '그걸 왜 지금 해야 하느냐고요'라는 투정을 목구멍에서 가까스로 삼켰다.
어지럼증이 가라앉을 무렵 기체는 고도를 낮춰가며 강변 착륙장 상공으로 진입했다. 발을 앞으로 쭉 뻗은 자세로 하네스를 의자 삼아 풀밭에 부드럽게 착지했다. 욕심 같아서는 발을 구르며 멋지게 내려앉고 싶었으나 안전을 위해 자제하라는 안 회장의 충고를 고분고분 따랐다.
스파이럴에 넋이 조금 나가긴 했지만 땅에 내려서자 또 이륙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마약이에요, 마약. 패러글라이딩에 빠지면 하늘만 쳐다보면서 산다니까요."길라잡이를 해준 황재훈씨의 말에 100% 공감이 갔다.
단양=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 이론·이륙·착륙 등 8일간 기본교육 받아야
패러글라이딩은 비교적 단순한 장비를 이용해 하늘을 날기 때문에 조종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력 18년차 안영호 단심무궁 패러글라이딩클럽 회장은 "기본부터 제대로 배워야 고급 기술까지 무리 없이 구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패러글라이딩 기술은 전문 스쿨에서 배울 수 있다. 산이 많은 지형 덕분에 국내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은 경기 양평군, 충북 단양군, 경북 문경시, 경남 하동군, 전북 장수군 등 지방자치단체마다 한두 곳씩 있지만 활공장에 찾아간다고 패러글라이딩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스쿨이 대도시에 사무실을 두고, 비행 때만 활공장을 찾기 때문에 미리 알아본 뒤 약속을 잡아야 한다.
스쿨의 선택 조건은 무엇보다 안전이다. 이론 교육과 지상 훈련이 탄탄해야 하는것은 물론이고, 이ㆍ착륙을 도와 줄 수 있는 전문 강사가 있는 곳이어야 돌풍, 국지성 호우 등 돌발 상황을 만나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전문 강사들은 이륙장과 착륙장에서 각각 무전기를 통해 브레이크 줄을 얼마나 당겨야 하는지, 비행 경로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등을 세세하게 지시해 준다.
대한레저스포츠협의회는 안전을 고려해 단심무궁 패러글라이딩클럽, 스카이 패러글라이딩스쿨, 한국패러학교 등 10곳을 추천했다. 이들 스쿨은 물론 보험에 가입한 곳이다.
초보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스쿨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8일 간 수업을 기본으로 한다. 비행 원리와 명칭 등을 익히는 이론 교육, 이륙 지상 훈련, 착륙 연습, 저고도 비행 연습 등이 각각 하루씩 진행된다. 6일차부터 8일차까지는 무전기를 통한 지시를 줄이면서 혼자 비행하는 힘을 키운다. 1일 수업은 보통 6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비용은 단심무궁 패러글라이딩클럽의 경우 8일차까지 장비 대여료와 중식비를 포함해 60만원이다. 강사와 동승해 하늘을 한 번 날아 보는 맛보기 격의 '텐덤(Tandem) 비행'은 평균 8만~10만원이다.
초보자 교육을 마치면 단독 비행이 가능하다. 교육 기간에는 장비를 빌려 주지만 수료 후에는 장비를 구입해야 한다. 패러글라이딩 경력 11년차 장한덕(37)씨는 "자신의 체중에 맞는 장비를 사용해야 기술을 익힐 수 있다"며 "패러글라이딩을 계속할 생각이면 장비를 구입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초보자용 장비는 450만~500만원. 굳이 새 장비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동호회를 통해 중고품을 3분의 1 가격에 살 수 있다.
대부분 초급자 장비를 사서 1년 정도 쓰고 중급자 장비를 구입하기 때문에 초보자용 중고 장비 구입은 어렵지 않다. 장비를 구입하는 초기 비용이 많이 들지만 활공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상급 장비를 살 때까지는 추가로 돈이 들지 않는 것도 패러글라이딩의 장점 중 하나다.
허정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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