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하나 문 열 때마다 패션 업체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형편이니 이렇게 처량한 신세가 또 있을까요."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이 16일 재개장 예정인 가운데 백화점 업계의 입점 방해라는 고질병이 또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여성복 브랜드 A사. 연 매출 300억원을 넘보는 이 회사는 대부분의 여성복 업체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 올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5%대의 성장률을 보이는 등 브랜드 파워를 인정받고 있지만 최근 신세계 강남점으로부터 느닷없이 매장을 구석자리로 옮기라는 요구를 받았다. 신세계 영등포점 입점 요구를 거절한 것에 대한 페널티라는 것이 브랜드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런데 입점하지 않은 이유가 더 가관이다. 영등포 상권의 최강자인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이 노골적으로 입점을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브랜드로서는 롯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 업체는 지난해 3월 롯데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세계 부산 센텀시티점에 입점했는데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롯데 대구 상인점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입점해야 했던 아픈 전력이 있다. 상인점은 이 브랜드의 30여개 매장 중 수익률이 가장 낮은 부류에 속하지만 백화점 눈치 보느라 매장을 뺄 수도 없는 상태다.
국내 유통 업계의 양대 공룡 사이에서 패션 업계가 동네 북 신세가 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롯데 신세계 현대 등 백화점들의 입점 업체 내부 정보 불법 취득 및 입점 방해 등을 공정거래 위반으로 판단, 과징금을 추징한 것이 불과 1년여 전.
그러나 당국의 규제에는 아랑곳없이 백화점들은 새로운 점포를 낼 때마다 패션 업체를 상대로 타 백화점 입점을 방해하고 이에 불응할 경우 페널티를 가하는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다. 타 제품군에 비해 패션 업체에 대한 압박이 심한 것은 패션 관련 매출이 백화점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큰 데다 패션이 타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백화점 유통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
최근 백화점들은 수입 브랜드 위주로 매장을 재편하고 해외 브랜드 직수입, 자체 패션 브랜드 런칭 등 유통뿐 아니라 패션 사업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패션 업체에겐 앞으로 더욱 가혹한 한파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영입 경쟁을 위해 럭셔리나 직수입 브랜드에는 낮은 수수료를 매기고 그에 따른 수익 손실은 국내 브랜드에 턱없이 높은 수수료를 책정해 충당하는 형편이니 패션 사업 실험에 따른 비용 부담이 입점 브랜드들에 전가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결국 백화점의 횡포에서 벗어나려면 백화점 유통 의존도를 낮추고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다행히 이랜드를 비롯한 몇몇 패션 업체가 SPA(제조와 유통을 겸하는 패션업) 형태의 가두점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패션 업체들이 역으로 유통 실험에 나선 셈. '자라'나 '유니클로'처럼 백화점의 후광 없이도 당당히 설 수 있는 브랜드의 탄생이 가능할지 기대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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