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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20일 '석전 영호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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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20일 '석전 영호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 세미나

입력
2009.09.1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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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문 중흥의 종주로 꼽히는 백파(1767~1852) 스님에게 어느날 친구인 추사 김정희가 '만암(曼庵)' '석전(石顚)'이라는 두 호(號)를 선물한다. 그 이름에 어울리는 제자에게 주라는 의미였다.

생전의 백파는 그 이름을 아꼈고, 추사의 문기(文氣)가 밴 이름의 주인은 백파 문중의 법통으로 7대를 내려와서야 등장한다. 한국 근대 불교의 주춧돌을 놓은 대강백이자 선승인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1870~1948. 법명 정호 또는 영호) 스님이 그다.

석전은 '금강석처럼 맑고 빛나는 돌머리'라는 의미라 한다('만암' 호는 석전의 제자로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설립한 만암∙1876~1957 스님에게 갔다). 전북 고창 선운사는 20일 '석전 영호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을 주제로 학술 세미나를 연다.

석전은 유불선에 통달한 석학으로 해방 후 조선불교 중앙총무원회 제1대 교정(현 조계종 종정)을 지냈고, 1919년 한성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기도 한 항일운동가였다. 불가의 숱한 제자를 길러 조계종 강맥의 굵은 줄기를 이뤘고 가람, 위당, 육당, 춘원, 벽초, 미당 등 숱한 재가 불자 지식인∙문인들도 그를 사숙했다.

육당 최남선은 한 글에서 "스님의 해박하심은 내외전을 꿰뚫어 감히 내가 미칠 바가 못 된다"고 했고, 만해 한용운도 그를 사형으로 모셔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얻었다고 한다. 미당 서정주(1915~2000)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석전은 서울 중앙고보와 고창고보에서 퇴학당한 뒤 방황하던 미당을 중앙불교전문학교에 불러 가르쳤고, 미당은 석전을 "나의 피와 살을 데워준 스승"이라며 기렸다.

석전은 한학에 능해 고운 최치원의 사산비명 주석서 등 700여 편의 글을 남겼고, 3,000여 수의 한시를 썼다고 한다. 육당이 그 한시 가운데 420편을 추려 <석전시초> 라는 책을 엮었는데, 미당이 다시 150여 수를 뽑아 번역한 원고가 미당 사후인 2006년 공개되기도 했다.

세미나에서는 노권용 원광대 교수 등이 석전의 사상과 유신운동, 문학관 등을 조명한다. 석전이 덜 알려진 것은 후학들의 광채가 워낙 밝았던 까닭도 있겠고, 선맥을 중시하는 한국 현대불교의 풍토 탓도 있겠고, 백파에서 비롯되는 문중의 세가 비교적 약했던 탓도 있을 것이라 한다. 선운사 주지 법만 스님은 "석전 스님을 밝게 조명하는 일이 늦은 감은 있지만, 선과 교를 아울렀던 스님을 우리 불교계가 본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선운사는 세미나와 함께 19, 20일 선운문화제를 열고 산사음악회와 전통차 시음 등 행사를 갖는다. 석전의 육필 원고와 편지, 엽서 등 유묵 50여 점도 11월 22일까지 전시한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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