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익는 계절이 왔다. 겉은 불그스름히 물들고, 속은 노랗게 익은 사과는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버터 달걀 소금 설탕에 물을 부어 가며 반죽을 짓는 일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을의 별미 중 하나는 갓 구워낸 애플파이다.
반죽할 때 중요한 포인트는 밀가루를 반드시 체로 쳐서 쓴다는 것. 그래야 밀가루 반죽을 만들 때 덜 뭉치고, 체로 치는 과정에서 가루와 공기가 자연스레 섞여서 완성된 파이의 식감이 바삭하다.
반죽은 10분 정도 먼저 초벌구이하면 좋다. 생 반죽에 바로 사과 소를 넣어 오븐에 구우면 사과에서 흘러나오는 물기 때문에 반죽이 고루 익지 않을 수 있다.
자, 그러면 사과로 소를 만들어 볼까. 사과를 한 입 크기로 써는데 무농약 사과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쓴다. 팬에 버터를 녹인 다음 사과를 볶다가 설탕이나 매실 청 등을 넣어 단맛을 내 가면서 졸인다.
여기에 레몬 즙과 계피 가루를 더하는데 특히 계피가루는 반드시 필요한 향신료다. 사과와 100점짜리 맛의 궁합을 이루는 계피는 소량만 넣어도 완성된 파이의 전반적인 맛이 달라진다.
애플파이의 계피처럼 눈에 바로 띄지는 않지만 전체 분위기나 맛에 영향을 주는 예가 또 있다. 이북식으로 말아 먹는 김치말이에 한 방울 넣는 조선간장이 바로 그것.
메주와 천일염으로 정성껏 묵혀 만든 조선간장은 내 실력으로 만들기에는 어림도 없는 주방의 감초다. 친정 엄마의 조선간장은 맑고, 꼭 필요한 만큼의 양념을 만들어 준다.
김치말이는 시원한 이북식 김치 국물과 기름을 싹 걷은 고기 육수를 섞은 다음, 마지막 간을 조선간장에 의지한다. 이렇게 기본 간이 딱 맞아야 그 다음 밥이나 식은 빈대떡 등을 넣었을 때 여전히 맛있는 거다.
애플파이는 사과와 반죽, 김치말이는 김치랑 밥으로만 만들어지는 듯 보이지만 실은 계피나 조선간장이 없으면 맛의 완결성이 떨어지게 된다.
어느 모임에 가도, 어떤 가족을 봐도 계피와 조선간장 같은 사람들이 있다. 드러나지 않아도, 목소리 높이지 않아도 주위 사람들이 꼭 찾게 되는 소중한 이들이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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