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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혼수 줄 테니 결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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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혼수 줄 테니 결혼해라?

입력
2009.09.1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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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방방곡곡이 때아닌 짝짓기로 시끌시끌하다. 행정안전부가 내년 7월을 목표로 추진하는 기초 시군 통합 때문이다. 통합을 원하는 곳이나 원하지 않는 곳이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행정구역 통합의 기본취지가 효율과 시너지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반대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면 좀 불안한 생각이 든다.

우선 일정이 너무 촉박하고 추진방식이 주먹구구식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행안부는 이달 말까지 통합건의를 받아 11월 초 주민투표를 끝내고 연말에 설치법안을 마련해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시기적으로 너무 일찍 시작해도 단체장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에 이 시점을 잡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통합이 거론되는 지자체는 수십년간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있던 곳이 적지 않다. 그런 곳이 단 2,3개월 내에 합쳐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사소한 문제이긴 하지만 지명을 무엇으로 정할지도 변수이다. 서울에서 동 명칭 하나 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자기 고향 이름이 없어진다고 하면 가만이 있을까.

추진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행안부는 강요하는 게 아니고 자율적으로 의사결정해서 추진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다만 통합된 지자체에는 교부세액 수준을 5년간 보장하고 각종 사회간접자본을 우선 배정하는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지원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마치 혼수품을 잔뜩 마련해 놓고 옆집에 사는 총각 처녀끼리 결혼하면 다 줄 테니 어서 결혼식부터 하라는 꼴이다.

이 대목에서 행안부에 한가지 묻고 싶다. 전혀 성격도 안 맞고 가풍이 틀리더라도 함께 살면 효율적이라고 결혼 시킬 건가. 물론 그 과정에서 정부가 양쪽이 잘 어울리는지 살펴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충북 증평군의 사례를 보면 정부가 얼마나 안이하게 행정구역 개편을 해왔는지 알 수 있다. 증평군은 2003년 괴산군으로부터 분리돼 독립 자치단체가 됐다. 그런데 갑자기 괴산군이 나서서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당시에는 증평군이 독립해야 만이 지방자치제의 효과를 볼 수 있고, 모든 게 잘 될 것처럼 모두 떠들어댔다. 그렇다면 불과 6년 만에 그 실험이 실패했다는 말인가.

그렇게 분리하는 과정에서 공무원 숫자 늘려 놓을 땐 언제고 이젠 통합해서 줄이자는 게 설득력이 있나. 행정구역 개편이 무슨 실험 대상인가. 또 서울 금천구는 어떤가. 금천구는 1995년 구로구에서 떨어져 나왔다. 증평군과 똑 같은 이유에서다. 그래 놓고 이번에는 옆에 살고 있으니 통합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행정구역 통합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고령화와 도시ㆍ농촌간 인구 이동, 광역적 지역개발이나 국가 경영 효율성 등을 볼 때 이제 대권역으로 가는 것이 대세라고 본다. 재정자립도 낮은 지자체들이 청사부터 신축하고, 비슷비슷한 축제와 문예회관 만들어 예산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유사한 지역은 통합돼야 한다. 또 쓰레기소각장이나 화장장을 만들 때나 사용할 때 서로 눈 부라리는 걸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초자치단체 숫자를 확 줄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방식은 치밀해야 한다. 통합이 꼭 필요한 지역에 대해서는 다각도의 연구와 조사를 거쳐 구체적 근거를 갖고 주민과 여론을 설득해야 한다. 정부는 통합 지자체 숫자에만 관심을 갖기보다 얼마나 그 취지에 얼마나 맞는지, 앞으로 탈이 나지 않을지 등부터 검토해 대책도 세워야 한다.

최진환 정책사회부장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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