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 현대차 연구소 보안담당자는 컴퓨터 시스템 기록을 하던 중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선임연구원 천모씨가 내부시스템에서 기술 자료를 외장하드디스켓으로 대량 다운로드 받은 것이 보안시스템에 잡힌 것이다.
현대차가 운영 중인 보안시스템은 기술 자료를 업무용 PC로 다운로드 받거나, PC에서 개인 외장하드디스켓 장치로 다운로드 받을 경우 자동으로 기록이 남게 돼 있다. 결국 검찰 수사결과, 천씨는 700억원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엔진 전자제어 등 10개 기술을 5,000만원을 받고 정비업체에 사장에게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천씨는 결국 구속기소돼 쇠고랑을 차는 신세가 됐다.
2002년 '짝퉁차'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중국 체리차의 '큐큐'. 체리차는 개발비 수천억원 대신 GM대우 출신 인력을 스카우트해 마티즈 복사판을 내놨다. GM대우는'기술 유출'이라며 2년여간 소송까지 했으나 결국 중국 법원은 체리차의 손을 들어 줬다. 자료 유출에 대한 물증이 없고, 인력 스카우트에도 별 문제가 없다는 판결이었다.
10일 또다시 GM대우의 라세티 제조 기술이 러시아 자동차업체에게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업계는 '남의 일이 아니다'며 비상이 걸렸다. 특히 중국, 러시아 등 후발 자동차 국가들은 요주의 대상이다. 이들 국가의 자동차 업체들은 우리나라의 선진 기술을 빼가기 위해 무차별 공세를 펴고 있다.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가장 주안 점을 두는 것은 컴퓨터 보안 시스템.
현대ㆍ기아차는 아예 연구소 내 도면과 기술자료 등 모든 중요자료에 암호를 부여해 접근과 이동경로를 제한하고 있다. 또 연구소 내에서 일반 USB 사용이 불가능하다. 올해부터는 아예 회사 내부시스템에서 누구든 기술자료를 다운로드 받을 경우 기록이 남는 '조기경보시스템'까지 가동하고 있다. 외부 해킹을 방어하기 위해 3~4중의 방어벽을 구축, 주기적으로 모의 해킹 방어 훈련까지 실시하고 있다.
르노삼성차도 디자인센터와 연구소는 모든 문서를 암호화하는 프로그램(DRM, Digital Right Management)을 운영 중이다. 또 자료를 노트북에 담아 갈 경우, 외부에서는 활용될 수 없도록 한 보안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인력 유출 문제에 대해서는 뾰족한 대응 방법이 없어 골머리를 썩고 있다. GM대우 등 자동차 업체들은 퇴사시 3년간 동종업계 이직을 하지 않겠다는 등의 보안서약서를 받고 있지만 이번 라세티 기술 유출에서 보듯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법적인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궁여지책으로 동료 연구원이 이직할 낌새가 있을 경우, 상부에 보고하도록 인사운영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유학 간다''좀 쉬어야겠다'는 등의 핑계로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수천억이 필요한 신차개발과 기술 습득을 몇 십억원이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검은 유혹'은 계속 될 것"이라며 "아무리 보안 시스템을 강화해도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GM대우 라세티 승용차 기술유출 사건과 관련 참고인 조사를 받던 러시아 자동차회사 타가즈코리아 임원 김모(49)씨가 지난 4일 금천구 가산동 회사 지하1층 작업장에서 목을 매 숨진 것으로 뒤 늦게 드러나 이번 파문은 쉽게 가라 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타가즈 측은 "이번 건은 기술 유출이 아니라 벤치마킹"이라고 주장, 외교문제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 3일 러시아 자동차회사로 이직하면서 전 직장 GM대우의 준중형차인 라세티 제조 핵심 기술을 빼돌린 혐의(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전 GM대우 연구원 황모(43) 씨와 정모(43) 씨를 구속 수사중이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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