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에게 9월 9일은 닭고기 먹는 날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날 홍대 앞에서는 그와는 완전히 색깔을 달리하는 행사가 벌어졌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몸소 어르신들이 보여준 '나이 없는 날' 행사가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나이 없는 날'. 그 날은 더 젊어지는 날이었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방송가에는 그런 기운과 반대되는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다.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려는 언사들이 방송가를 온통 휘감고 있다.
방송의 날(3일) 시상식에서 MBC '무한도전'의 김태호PD가 전한 수상소감을 한 단체가 문제 삼고 나섰다. 과거 방송 일을 했던 여러 방송 선배들이 만든 조직이었다. 수상 소감에서 전현직 문화방송 사장에 "힘내라"는 말을 문제 삼아 심의를 통해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비평을 냈다.
왜 이를 문제 삼을까. MBC와 '무한도전'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현 정권에 '프렌들리'하지 않은 내용과 인물에 대한 불만 말고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었다. 방송은 정권을 닮아야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고루한 것인지 아직 실감하지 않는 듯해 안타깝다.
방송 관련 학계가 마련한 한 토론회 자리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최시중 위원장은 기업을 위해 학계, 언론 등 사회 전반이 기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기업을 사회 중심에 두자는 주장 같아 여간 염려스럽지 않다.
기업의 중요성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나라 살림이 더 좋아져야 한다는 그의 진정 어린 충심도 무시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개발도상에 놓여 있던 그런 시절은 아니다.
기업은 사회의 감시 속에서 살아야 하고, 사회를 위해 펼 수 있는 지혜를 더 많이 꾸려야 하는 상생의 시대다. 그의 발언도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는 것에 다름아닌 것 같아 불편하기 짝이 없다.
두 주요 공영방송사의 신임 이사장도 과거가 물씬 묻어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방송 내용을 포함한 전반으로 확장시키고 경영의 차원을 방송 전방위로 돌려 개입의 의지를 불태우는 듯하다.
과거 방송에 정치가 개입되던 때의 방송 풍경을 연출하고픈 욕망들을 비친다. 혹 자신들이 살아왔던 과거가 더 괜찮았던 효율적 사회였다고 회상하는 탓은 아닐까 우려스럽다.
방송의 진화 속도는 참으로 더디다. 방송은 사회가 바뀌고 난 한참 후에야 바뀌는 보수적 속성을 보인다. 한국 사회 민주화에 방송이 기여한 바가 크지 않을 만큼 방송은 사회의 뒤를 쫓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급급했다.
그나마 사회의 모습을 따라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즈음해서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려는 움직임이 힘을 얻고 있다. 방송이 자칫 70년대, 80년대로 돌아가 이른바 '7080 방송'이 될까 걱정스럽다.
서민정치 슬로건으로 시끌벅적하다. 시장으로 노동현장으로 향하는 정치인들의 발길로 어지럽다. '나이 없는 날' 축제에도 그런 발길들이 이어지길 염원해본다.
대중들의 삶 속 깊숙이 들어가 그들이 얼마만큼 신나고 편하게 그리고 자유스럽게 살고파 하는지도 꼼꼼히 체험했으면 한다. 지금의 방송가에는 그런 행보가 너무도 절실하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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