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울지 않았다. 지난 9일 막을 내린 제45회 울산 세계양궁선수권대회 여자 리커브 개인전 결승에서 주현정(현대모비스)의 벽에 가로 막힌 곽예지(17ㆍ대전체고)는 눈물 대신 환한 미소로 큰 언니 주현정의 품에 안겼다.
불과 하루 전 열린 단체전 결승에서 곽예지는 금메달을 목에 건 뒤 한없이 울음을 쏟아냈다. '여고생 신궁'으로 적지 않은 부담을 가졌던 곽예지는 "막상 단체전이 끝나니 서운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신궁, 그러나 여고생
여자 양궁 대표팀의 이은경 코치는 곽예지가 한발 한발 쏠 때마다 다가가서 등을 두드려주고 귓속말도 하면서 자연스런 스킨십으로 여고생의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마치 선생님이 학생을 대하듯 친밀감을 유도하는 것이 곽예지에게는 기술적인 조언보다 중요했다. 실제로 이 코치는 "기술적으로는 이미 최고 수준이지만 아직은 일반 학생 같은 면이 많다.
운동 선수이긴 하지만 감수성 풍부하고, 그 나이 또래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난다"고 말했다. 이 코치 뿐 아니라 구자청 감독과 대표팀 물리치료사 등은 각 엔드가 끝날 때마다 한꺼번에 몰려가 따뜻한 얘기를 건네고 어깨를 주물러주곤 한다.
아직은 훈련이 없을 때면 TV 드라마에 푹 빠져 있고, 최신 노래를 흥얼거리며, 외모에 관심이 많은 꿈 많은 나이다. 이 코치는 "아직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활을 쏘는 건 타고났지만 17세 소녀. 말 그대로 '여고생 신궁'이었다.
여고생 신궁에서 여자 양궁의 대들보로
곽예지는 지난 2007년 11월 만 15세2개월의 어린 나이에 대표팀에 선발되며 종전 김수녕이 가지고 있던 최연소 양궁국가대표 기록(16세2개월)을 1년이다 단축했다. 이번 대회 3명의 대표를 뽑는 마지막 5차 선발전에서는 8명 중 2위, 3~5차 합산 점수에서는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상위 3명에게 주어지는 출전 자격을 얻었다.
"베이징올림픽에 꼭 나가보고 싶었는데 마지막에 떨어져서 속상했어요. 막상 대표에 뽑히니 단체전을 앞두고 걱정이 됐어요. 제가 실수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까봐요." 단체전 금메달을 딴 뒤 한없이 울었던 곽예지의 눈물의 의미였다.
"욕심은 있었지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고, 개인전 은메달도 소중하죠. 앞으로 기회는 더 많이 있을 테니까요."
곽예지는 이번 대회에서도 최고 스타였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의 사인과 기념 촬영 요청이 줄을 이었다. 박성현(전북도청)이 빠지고도 세계 최강 자리를 확인한 한국 여자 양궁은 혜성처럼 나타난 곽예지의 등장으로 흥분하고 있다.
성환희 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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