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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음행의 상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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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음행의 상습

입력
2009.09.0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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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1992년 4월 입법예고한 형법 개정안은 학계, 법조계 인사 30명으로 구성된 형사법개정 특별심의위원회가 85년부터 7년 동안 연구ㆍ토론을 거쳐 확정한 것이었다. 형법은 이 법의 특성상 국민 기본권과 일상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데도 불구하고 53년 제정 이후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아 현실의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개정안에는 강도치사 등 10개 범죄의 처벌 내용에서 사형을 삭제하는 등 의미 있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은 혼인빙자간음죄와 간통죄의 폐지에 쏠렸다.

▦법무부는 언론과 공청회를 통해 두 죄 폐지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남녀의 내밀한 사생활에 속하는 성 문제에 대해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은 성적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간통죄 폐지 반대 여론은 높았지만 혼인빙자간음죄 폐지에 대한 여성계의 반대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다. 법무부는 간통죄는 그대로 두고 혼인빙자간음죄는 삭제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7년의 논의 끝에 마련된 개정안은 정당 간 견해차로 국회에서 3년을 표류하다 14대 국회 마지막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되는 비운을 맞았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2년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보호하려는 정당한 목적이 있다"며 7대 2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로부터 7년 만에 같은 내용의 사건이 헌재에 접수돼 10일 공개변론이 열린다. 여성부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淫行)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를 처벌토록 한 형법 304조는 범행 대상을 여성으로 한정해 위헌이라는 입장이다. '음행의 상습 없는 여성'이라는 문구도 "여성의 정조와 처녀성을 중요시하는 가부장적 시각이 내포돼 있다"고 보고 있다.

▦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만 법에 적시한 것은 성매매 여성이나 자기 의지로 성 생활을 즐기는 여성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여성 차별 이전에 인간 차별의 문제다. 그러나 결혼을 미끼로 성을 유린하는 범법자들이 여전히 활개치는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 지난해 간통죄 합헌 결정을 고려할 때 혼인빙자간음죄는 그대로 두더라도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 만큼은 손질해야 한다고 본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법무부가 합헌 의견을 낸 점이다. 법 조항은 그대로이고, 성 개방 의식은 확산되고 있는데 법무부는 폐지와 존치를 오가니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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