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민간 배드뱅크)를 최대한 빨리, 그리고 조용히 청산시킨 후 시스템을 시장에 돌려주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 해결사'로 명성을 날린 이성규(사진) 하나금융그룹 부사장이 다시 구조조정 현장으로 돌아왔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양산된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은행권이 이달 말께 설립할 예정인 민간 배드뱅크의 초대 사장에 내정된 것.
민간 배드뱅크란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농협, 기업은행 등 6개 시중은행이 부실자산 매입ㆍ처리를 위해 1조5,000억원을 출자하는 기관. 외환위기 당시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수혈 받아 기업의 부실채권을 인수했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민간 배드뱅크 설립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그는 초대 사장 1순위로 거론되어 왔다. 1998년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에 의해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초대 사무국장으로 발탁돼 대우그룹을 비롯한 재벌 구조조정 실무작업을 직접 지휘했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권이 직접 나서 부실기업을 정상화시키는 프로그램인'워크아웃(기업개선제도)'제도를 도입해 그 뿌리가 내리도록 하는데도 산파 역할을 했다. 국내 최고의 구조조정 전문가인 만큼 민간 배드뱅크 초대 사장이 된 것은 당연하다는 게 금융계 안팎의 평가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역시 9일 오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비교적 쉽게 초대 사장직을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민간 배드뱅크 설립을 논의할 때부터 자문역을 해왔고, 내가 제일 잘 아는 분야라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이 내정자는 이날 인터뷰에서 민간 배드뱅크의 역할을 ▦부실채권 시장 정상화 ▦인수ㆍ합병(M&A)시장 활성화의 두 가지로 정리했다. 부실채권 거래가 활성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은행들이 물량을 쏟아 낼 경우 부실채권 가격의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시장 활성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자본금을 대준 은행권을 의식, 민간 배드뱅크가 오히려 부실채권을 고가에 매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과거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공정성을 원칙으로 일을 했으며, 우리도 이익을 내야 하는 만큼 그럴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내정자는 "외환위기 당시의 구조조정 사무국이 2년 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것처럼, 이번에도 최대한 빨리,그리고 조용히 약속된 시간(존속기간 5년) 내에 회사를 청산하는 것이 경영 목표"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손재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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