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포고는 보령제약의 몫이었다. 보령제약은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백신기업 시노박(Sinovac)의 원액으로 만든 신종플루 백신에 대해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신속 심사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령제약은 앞서 시노박과 1,000만 도즈(1회 접종 량) 이상의 신종플루 백신을 독점 공급받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식약청은 임상시험 결과 서류 검토와 중국 현지 제조 시설 실사를 거쳐 백신의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데 허가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11월 말께 첫 수입 물량이 국내에 공급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
일단 개발 단계상으론 보령제약이 한 발 앞선다. 특히 시노박의 백신은 임상 시험이 끝나 세계 최초로 보건 당국의 허가를 받고 3일부터 중국 국민에게 접종을 하고 있다. 게다가 수입 백신은 한국 에서 임상 시험을 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녹십자는 이제 막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녹십자의 백신이 나오기 전 10월께 신종플루가 크게 유행할 가능성이 나오면서 정부가 백신 구입에 서두를 수밖에 없고 실제 사용 중인 중국 백신이 유일한 답이라는 게 보령제약의 계산이다.
문제는 중국 백신이 국내에서 허가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 전용관 보령제약 R&D 센터장은 “시노박 백신은 1회만 접종해도 되고 다른 글로벌 기업 백신보다 30%가량 싸다”며 “세계보건기구(WHO) 독감백신 납품기업(Supply chain)에 속해 있고 중국 백신 기업 11개 중 유일하게 미국 나스닥에 상장돼 있을 만큼 품질은 믿을 만 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 다른 나라 중 시노백 백신을 수입 키로 한 나라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나 국민들로부터 얼마나 빨리 신뢰를 얻을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그 동안 국내 제약사 중 유일하게 전남 화순에 신종플루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시설을 갖추면서 백신에서는 독보적이었던 녹십자는 보령제약의 ‘한 방’에 긴장하면서도 자체 백신 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녹십자는 이날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로부터 백신 2,000만 도즈를 만들 수 있는 면역증강제 MF59를 수입한다고 밝혔다. 녹십자는 앞서 우리 정부와 올해 안에 700만 도즈의 백신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면역증강제는 항원의 면역 반응을 증폭시키는 물질로 더 적은 항원으로도 면역력을 만들 수 있게 돕는데 이것을 쓰면 백신의 생산량을 2~4배 늘릴 수 있다. MF59는 지난 10여 년 동안 4,500만 도즈의 독감 백신에 쓰였으며 2만 명 이상이 참여한 64개의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입증했다고 녹십자 측은 밝혔다.
녹십자는 다음 주 중 식약청에 임상시험계획서를 식약청에 낼 계획이다. 임상 시험은 2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보여 빨라야 11월 중순에야 접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녹십자는 처음 1,200만 도즈의 신종플루 백신을 만들 수 있는 항원 생산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이 중 700만 도즈는 항원만으로 백신을 만들되 나머지 항원으로는 면역 증강제를 이용해 1,000만~2,000만 도즈를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건 부사장은 "녹십자 신종플루 백신을 접종 받을 수 있는 인원 수가 늘어 백신 부족에 대한 우려를 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녹십자와 보령제약의 백신 확보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지난달 정부가 영국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로부터 도입 키로 구두 약속 받은 300만 도즈를 포함, 우리나라는 내년 2월까지 최대 4,700만 도즈의 신종 플루 백신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는 1인 당 1회씩 접종할 경우 우리나라 인구 대다수가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양이다.
되려 일부에서는 백신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여론에 끌려 일단 백신을 확보하고 보자는 식으로 나섰고 업계도 이런 분위기에 이끌리다 보니 자칫 접종에 쓰이지도 못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업계의 백신 확보 동향 등을 치밀하게 따져 보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백신 확보에 나서다 보니 이제는 너무 많은 양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다”라며 “빨라야 11월 중순 넘어서야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고 볼 때 10월, 11월에 대유행이 오면 적장 필요할 때도 못 쓸 지 모른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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