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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조금 삐딱한, 조금 재미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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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조금 삐딱한, 조금 재미있는

입력
2009.09.0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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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미남'이라는 남성이상형을 '짐승남'으로 바꾸어버릴만큼 남성호르몬 팍팍 풍기며 인기를 끌던 아이돌그룹 투피엠(2PM)의 리더 박재범(21. 예명 재범)씨가 연습생 시절에 인터넷 개인공간인 마이스페이스에 영어로 올린 한국 '비하'발언이 문제가 되어서 투피엠을 자진탈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문제가 되었던 내용을 살펴보니 왜 그만뒀지, 싶다. 한국비하발언이라고 볼만한 내용도 아니고 상스런 소리가 마구 섞여있는 것이 읽기에 좋지는 않았지만 그 또래의 껄렁한 청소년이라면 할법한 표현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한국비판

이 문제를 처음 공론화한 신문은 그가 '한국은 역겹다'고 했다지만 원문 'Korea is gay'는 '한국은 구리다' 정도이고 이 말은 물론 '나는 한국이 싫다'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 누군들 못할 말일까 싶었다. '한국은 정상이 아니다. 내가 하는 수준낮은 랩을 잘한다고 칭찬한다. 정말 멍청하다'라고 썼다는데, 그건 참 옳게까지 들렸다.

랩의 바탕이 된 힙합이라는 장르가 미국의 하위문화에서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랩의 내용이 고상한 것은 아니나 영어의 운율을 잘 맞춰야 하기 때문에 쉬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랩을 하는 것을 보면 토막영어를 시끄럽게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힙합의 저항정신을 살려내지도 못하고 수준도 낮은 것 맞다. 미국 랩이라고 다 수준높은 것은 아니겠지만 정통 랩을 많이 듣고 자란 사람이라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자기반성이 한국 비하발언이 된다는 상황이 놀랍다.

어쨌든 한국에서 돈을 버는 공인이 우리나라에 대해 이렇게 무례하다면 제 나라로 돌아가는 게 낫다는 의견이 인터넷에 들끓었고 공론화한 지 사흘만에 재범은 미국행을 선택했다. 제 나라 역성들기로는 전세계에서 첫 손 꼽히는 프랑스 사람들의 국수주의가 걱정되었던지 샤를 드골은 이런 말을 했다. "애국심은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고 민족주의는 다른 나라를 미워하는 것이다." 재범이 한 말도 그가 한국인이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테니 그에 대한 증오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파시즘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다만 그것만 문제일까. 원래 대중이란 물 같은 존재이다. 가뭄에 단비도 되고 태풍의 폭우도 된다. 스타를 좋아하는 수만가지 이유가 있는 것처럼 스타를 싫어하는 수만가지 이유도 가질 수 있다. 그런 이유를 밝히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다. 밝히는 방법이 욕설이거나 인종차별, 민족주의를 담고 있다면 문제이긴 하지만 거기에 대응하여 사과를 하고 그룹을 탈퇴하는 것이야말로 우습다.

그가 한 말은 공인이 되기 전에 사적인 영역에서 친구한테 푸념한 것이다. 사과가 아니라 그 때는 내가 그랬다, 그러면 될 일이다. 울퉁불퉁한 청소년기를 거쳐서 반듯한 성인이 되는 것이 반듯한 청소년기를 거쳐서 편법으로 재산을 늘린 울퉁불퉁한 성인이 되는 것보다 좋다.

파시즘보다 큰 상업주의 문제

게다가 대중들이 이 울퉁불퉁한 젊음에 대해서 무조건 배타적이지도 않다. 디제이디오씨(DJ DOC)는 걸핏하면 시비에 휩쓸려 경찰서도 숱하게 끌려갔지만 여전히 대중의 인기로 먹고 사는 연예인이다. 욕도 많이 먹었지만 음악을 그만두지 않았다. 더 이상 그들이 사고를 치지 않자 사람들은 환영하기보다는 이제 그들도 나이를 먹는구나 하며 세월을 느낀다. 그들은 삐딱하고 재미있었다.

이들과 달리 재범이 투피엠을 서둘러 탈퇴해야 했던 것은 그게 돈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비난이 인기하락으로 이어지고 인기하락이 수입감소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는 그룹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고 소속사가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결국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키워진 연습생 출신 아이돌 가수가 지닌 태생적 한계이다. 그러니까 재범이 떠난 데는 대중의 파시즘보다 업계의 상업주의 책임이 더 크다.

무정형의 대중을 비난하긴 쉽다. 그러나 돈이나 인기와는 무관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알고 밀어붙일 뚝심이 없다면 누구도 제 삶을 온전히 살 수 없다는 것은 연예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서화숙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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