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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4〉변신은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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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4〉변신은 무죄다

입력
2009.09.09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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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생존의 첫 번째 조건은 '신속한 적응' 이다. 지금껏 굳건히 한국인의 주식 자리를 지켜온 쌀도 이젠 예외가 아니다. 무서운 경쟁자로 등장한 밀가루, 시리얼 등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한 처지가 됐다. 사람들의 다양해진 식습관에 부응해 변신하지 않으면, 남아도는 쌀은 앞으로도 애물단지가 될 수밖에 없다. 쌀의 변신은 이제 무죄, 아니 의무가 된 것이다.

'쌀=밥', 고정관념을 버려라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쌀이 주식(主食)이다. 하지만 쌀의 14%는 '밥'이 아닌 '가공식품'으로 소비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가공제품으로 소비되는 쌀은 생산량의 6%에 그친다. 여전히 '쌀=밥'이라는 고정관념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탓이다. 임정빈 농림수산식품부 식량정책과장은 "밥으로만 소비해서는 남아도는 쌀을 처리하기가 불가능해진 만큼 일본처럼 쌀 가공식품 시장 확대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국내 식량용 쌀 수요는 2000년 442만톤에서 올해 370만톤으로 72만톤 감소한 상황. 이렇게 쌀밥에서 이탈한 수요를 가공제품에서 뒷받침해줘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 기간 가공용 쌀 수요는 17만5,000톤에서 54만1,000톤으로 36만6,000톤 증가하는데 그쳤다. 소비자의 욕구에 보다 충실한 가공제품의 개발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밀가루에 도전장을 던지다

쌀 가공 업계에서는 올해 쌀 가공식품의 시장 규모를 1조원 정도로 추정한다. 즉석밥, 쌀과자, 쌀음료, 주류 등이 각각 1,300억~1,500억원의 시장규모로 쌀 가공식품 시장을 주도하고, 나머지는 쌀국수, 죽류 등의 식품이 메우고 있다.

쌀 가공제품의 선두주자는 '햇반'으로 대표되는 즉석밥이다. 1996년 쌀 가공식품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이후 지금은 CJ, 오뚜기, 농심, 동원F&B 등 내로라하는 식품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김연규 국립식량과학원 답작과장은 "즉석밥의 경우 '멸종' 위기에 처했던 '주안벼'에서 밥을 한 뒤 식혔다가 다시 데워도 갓 해낸 밥맛을 유지한다는 사실이 발견돼 상품화가 가능했던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쌀 가공제품 활성화를 위해서는 벼의 육종사업 활성화도 병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즉석밥이 여전히 '쌀=밥'이라는 인식의 테두리에 있다면, 최근 등장하는 쌀 가공식품은 밀가루에 정면 도전장을 던진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쌀라면, 쌀국수, 쌀자장면, 쌀빵에 이어 쌀고추장까지. 아직은 밀가루 제품에 비해 인지도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서서히 진가를 발휘하는 제품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청정원의 '순창 우리쌀로 만든 고추장'. 청정원은 고추장 하나로 연간 약 3,000톤의 우리 쌀을 소비하고 있을 정도다.

이창용 CJ제일제당 쌀가공연구팀장은 "우리 쌀이 가격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날로 높아지는 소비자들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재료의 고급화가 필수적이다"며 "수입 쌀이 점하고 있는 쌀국수 등의 영역도 앞으로 국산 쌀이 상당 부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대되는 쌀의 변신, 술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쌀이지만, 앞으로 가장 주목되는 분야는 술이다. 부가가치가 높아 농가 소득을 높여 줄 뿐만 아니라, 최근 불고 있는 한식 세계화 바람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술 시장 규모는 8조6,000억원. 소주와 맥주, 위스키가 전체의 87%를 차지하고 있다. 모두 쌀이나 농산물을 주 원료로 하지만, 그렇다고 국산 쌀이나 우리 농산물의 소비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게 현실이다.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이 술들이 80% 이상의 재료를 외국의 쌀과 농산물을 쓰고 있다"며 "자국의 농산물 100%로 만드는 프랑스의 와인, 독일의 맥주, 일본의 사케와는 대조적이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우리 쌀로 만든 술' 육성에 적극적이다. 쌀 소비 진작을 위해 더 없이 좋은 시장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태선 농식품부 식량원예정책관은 "전통주의 품질 고급화를 위해 내년에 주류성분표시제와 주(主)원료에 대한 원산지표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며 "품질인증, 원료산지 표시, 유기가공식품 인증제까지 정착하면 우리 술 산업은 물론, 국산 쌀 소비도 크게 증가할 것이다"고 말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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