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년 전만 해도 주가가 기업가치가 아니라 이슈나 테마 그리고 수급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기관 투자가에게 불신을 가졌던 개인 투자자들이 대안으로 기술적 분석을 채택하면서 기관 투자가들이 눈 여겨 보는 '실적'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당시 개인적으로 참 답답했던 게 실적은 계속 잘 나오는데 거래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혹은 차트가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실적이 주가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였다. 사상 최대 실적이 나와도 아무 반응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펀드 가입자의 증가로 기관의 시장 참여도가 커지면서 분기 실적은 바로 주가에 반영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개인들도 실적이 주가의 결정 요인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주식에서 최고의 호재는 실적이다'는 격언이 통용되는 것으로 보여 바람직한 변화로 여겨진다.
그러나 분기 실적을 놓고 최대 실적, 어닝 서프라이즈 등의 이름을 붙여가며 투자 모멘텀으로 삼는 모습은 과거와 너무 반대 쪽으로 쏠려가고 있는 거 같아 오히려 걱정스럽다. 심지어 전날 이미 실적 예상이 돌고 실적이 발표되면 오히려 주가가 떨어지는 기현상도 나타난다.
분기 실적을 잘 활용하기 위해선 '전년 동기 대비로 몇 백%가 늘어났다'는 식의 접근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는 마치 짧은 기간의 이익 증가가 미래에도 반복된다는 환상을 심어줘 고평가된 주식을 사는 우를 범하게끔 한다. 마찬가지로 사상 최대, 대폭 증가 같은 말도 조심해야 한다. 한 분기의 최대 실적이 다음 혹은 그 다음 분기의 최대 실적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대신 애초에 투자한 아이디어에 맞게끔 회사가 가고 있는지를 중간 점검하는 숫자로 활용해야 한다. 예컨대 이번 분기 실적이 잘 나올 것으로 원래 예상하지 않았고 그 만큼이 주가에 이미 반영되었다고 믿고 투자했다면 반 토막 분기 실적이 발표되었다 하더라도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 기업가치는 분기 실적의 증감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현금흐름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상장 기업들은 순이익뿐 아니라 분기별로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를 공개한다. 이것을 자세하게 뜯어보면서 재무구조에 훼손은 없는지, 이익의 질은 나빠지지 않았는지, 좋은 실적을 만들기 위해 분식을 하진 않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의문이 나는 부분이 있을 때 주식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유를 물어본다면 투자 판단에 큰 도움이 되므로 금상첨화다.
분기 실적을 기민하게 추적해 주가에 바로 반영하는 미국 시장을 닮아가는 모습이 꼭 선진화의 척도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워렌 버핏도 본인이 투자한 코카콜라에 분기 실적을 공개하지 말고, 1년에 한 번만 실적을 공개할 것을 요청한 적이 있던 것으로 미뤄보면 단기 실적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장기투자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닐까 한다.
버핏이 장기 전망은 좋지만 단기 전망이 어두웠던 종목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부(富)를 일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준철 VIP투자자문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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