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립니다
거지 아이의 거적때기 집에도 내립니다
거적때기 집이어서 방 안에도 비가 내립니다
이 나간 그릇과 찌그러진 냄비 위에도 내립니다
처음에 물받이 기명들은 이가 시리다고 울다가
빗방울과 함께 울다가
고인 물에 빗물이 합치는 울림으로 울다가
발장단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거지 아이가.
더럽고 앳된 손등이
비를 만나고 있습니다
고양이 세수도 하면서
만나고 가는 비와는 제법 지껄이면서
● 왜 시인들은 덜 가진 이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가. 돈 잘 버는 사장님이나 잘 나가는 정치가들에게는 조소를 던지지만 못난 이들에게서 노래를 발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병상련? 아니라면 물질적으로 핍박한 삶 속에 숨겨진 어떤 드라마 때문일까?
거지 아이의 '거적때기 집'에 내리는 비, 그 비를 지켜보면서 장이지 시인이 그려낸 이 장면. 잘 씻지도 못해서 때가 낄 대로 낀 손등, 그러나 앳된 손등. 그 위에 내리는 도시의 때가 잔뜩 낀 비가 떨어지는 이 장면.
돈 잘 버는 사장님이라면, 잘 나가는 정치가들이라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그늘진 인간의 한 현장에서 포착된 이 애절한 순간. 섬세한 시인의 시선이 문득 멈출 수밖에 없는 순간.
그 순간에 비가 내리고 거지 아이는 비에 젖는다. 그리고 시인의 눈도 비에 젖는다. 젖어가면서 슬쩍 웃는다. 이 순간은 슬프지만 조금은 아름답기도 한 까닭에.
허수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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