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연극의 태두인 동랑 이해랑의 꿈이 영근다. 1962년 동랑이 드라마센터에서 선보여, 당시 한국인들에게 사실주의 무대의 진수를 맛보게 했던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가 초연 무대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후배 연극인들의 노력으로 정통 사실주의 연극의 기치 아래 거듭난다.
명동예술극장은 재개관을 기념하는 두 번째 무대로 이 작품을 선정, 7일 제작진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원로 연출가 임영웅씨는 "1976년 서울시민회관 별관에서 산울림 공연으로도 했다"며 "이번에 해랑의 삶을 떠올리며 연출한 것은 이 삭막한 세상에서 큰 행복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서거 11주기(2000년) 당시 이해랑 추모 공연작으로 '세 자매'(손숙, 박정자, 윤석화 출연)를 올린 임씨는 "지난해부터 본격 추모 기념작을 생각해 왔다"며 "어머니가 마약으로 세상을 끝내는 비극적 가족 이야기지만 역으로, 소통의 노력이 있는 한 인간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고 상연의 의미를 짚었다.
이 작품은 파멸에 대한 이야기다. 대화의 단절이 빚어낸 엄청난 파국을 잔인하리만치 냉정하게, 사실적으로 그린다. 오닐이 "눈물과 피로 쓴 작품"이라 했을 만큼 아픈 가족사가 그대로 투영된 이 작품은 퓰리처상 수상에 이어, 연극과 영화 등으로 숱하게 재현돼 오고 있다.
시각적 효과를 배제, 언어와 연기의 힘으로 무대를 구축하는 이 연극은 원작 손상을 최소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변형과 재해석이 목표인 현재 연극 추세와 선명히 분리된다. 고전작이 해체나 변형 없이, 얼마나 고스란히 이 시대 무대에 안착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에 대한 답안이기도 하다. .
각색 작업을 맡은 극작가 김명화씨는 "4시간 30분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번역 희곡에서 직역투나 문어투 등을 순화시켜 3시간 분량으로 압축, 이 시대와 소통하게 하는 데 각색의 중점을 뒀다"며 "인간을 보는 집요함, 일체 감상을 배제한 지적 접근법 등이 여전히 큰 울림을 갖는 고전작"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배우의 연극이다. 등장 배우는 5명. 손숙과 김명수가 부부로, 최광일과 김석훈이 두 아들로, 서은경은 이 집안의 하녀 캐슬린으로 등장한다. 장민호, 황정순, 최상현 등 초연 배우들의 전설적 앙상블에 도전한다.
손숙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 무대를 보고 연극 배우의 길을 꿈궜다. 그는 "다시 못 돌아올 줄 알았던 명동예술극장에서 이해랑 선생님이 하셨던 작품을 임영웅 선생님의 연출로 하게 돼 믿어지지 않는다"며 "내가 이 작품을 보고 연극의 길로 뛰어들었듯, 또 다른 젊은이가 연극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면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무대가 힘든 삶에 위로를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18일부터 10월 11일까지. 화·목·금 오후 7시30분, 수·토·일 오후 3시. (02)727-0929
장병욱 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