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 반 전이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을 보고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고, 새삼 비인기종목에 대한 무관심을 반성이라도 하듯, 이제는 핸드볼 경기장에도 가자고 외쳤다. 우리>
감상적인'쇼'의 연출은 영화도 못지않았다. 실제 모델이 된 선수들을 무대인사에 초대해 그들이 마치 영화의 주인공인 것처럼 추켜세웠으며, 주연배우들은 '핸드볼 큰 잔치'가 열리는 경북 안동에까지 달려가 시구를 하면서 "핸드볼을 사랑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매스컴도 덩달아 춤을 췄다. 단지 배우들을 보기 위해 물려 든 관중을 핸드볼 '인기'로 과장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비인기 종목 부각시킨 '흥행 쇼'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도, 핸드볼도 잊었다. 핸드볼은 여전히 올림픽이 열리는 4년마다 한 번 찾는 비인기종목으로 되돌아갔다. 핸드볼 슈퍼리그가 열리는 잠실학생체육관은 오늘도 썰렁하다. 결승전인 데다 경기장소를 서포터즈가 있는 서울로 옮겼기에 900여명이나 찾았지, 지방에서 열린 예선리그 때는 늘 그래왔듯이 고작 몇 백 명이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이번에는 영화 <국가대표> 와 스키점프 열광이다. 어쩌면 모든 것이 <우생순> 과 이렇게 비슷할까. 사람들은 지독한 설움과 무시, 무관심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승리에 감동이라는 엄청난 발견을 한 것처럼 난리법석이다. 우생순> 국가대표>
영화는 실제 모델(선수)들을 극장 무대인사에 초대해 스타대접을 하고, 이달 초에 스키점프 대륙컵이 열린 강원 평창에는 그들을 보기 위해 9,000여 관중이 몰렸다. 배우들이 현장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국가대표> 의 태도도 달라졌다. 사회적 사명감을 가진 영화가 됐다. 누구보다 스키점프를 외면했던 매스컴도 호들갑이다.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영화 못지않은 감동의 글로 펼쳐놓았다. 그 뿐인가. 영화에서 보면 무관심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대한스키협회까지 분위기에 맞춰 발 빠르게 선수와 코치를 초대해 '스키점프 발전방안'에 대해 장시간 회의를 열어서는 지원문제를 고민했다. 국가대표>
이 모든 것이 스포츠 영화의 힘이다. 스포츠 영화는 우리가 몰랐던 선수들의 세계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고, 우리에게 그들의 설움과 아픔을 통해 감동과 환희를 맛보게 해준다. 스포츠 영화에는 인생을 집약한 드라마틱한 시간과 승부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세계는 비인기종목이고, 선수들이 보잘것없고, 무시 당하고, 상처가 많은 존재일수록 더욱 감동적이다.
누구나 익숙한 인기종목, 이미 세상에 알려진 선수들이어서는 안 된다. 모험을 걸고 <우생순> 이나 <국가대표> , 얼마 전 개봉했던 역도영화 <킹콩을 들다> 가 낯설고 그늘진 곳으로 간 이유이다. <스키점프> 처럼 경기장면을 사실적으로, 극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애를 쓴 것도 결국 감동을 보다 사실화,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이다. 스키점프> 킹콩을> 국가대표> 우생순>
스포츠 영화의 모든 행위의 목적은 흥행에 있다. 호들갑스럽게 선수들을 스타 대접하는 것도, 사회적 관심을 끌기 위해 비인기의 설움을 강조하는 것도, 경기가 열리는 곳을 찾아 격려금을 주는 것도 그런 이유다. 때문에 <우생순> 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가 극장을 떠나는 순간 이런'쇼'도 모두 사라진다. 영화도, 관객도 주인공들의 눈물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우생순>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회
영화 한 편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973년 호세 지오바니 감독의 <암흑가의 두 사람> 을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마지막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주인공 지노(알랭 들롱)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 이 영화가 나오고 나서 4년 후 프랑스는 기요틴(단두대)을 없앴다. 그리고 다시 4년 뒤에는 사형제도까지 폐지했다. 프랑스 정부와 국민들은 이 영화를 일회성 감성으로만 소비하지 않았다. 영화를 이성적 현실세계로 끌어냈다. 이런 지속력과 실천력이 없다면 영화는 언제나 영화일 뿐이다. 암흑가의>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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