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중개소에서 나눠주는 달력에는 '길일' 표시가 따로 되어 있다. 아무래도 이사가 흔치 않던 시절에 만들어진 문화인 듯하다. 타계한 삼촌 대신 숙모가 지키고 있는 외가도 외조부가 결혼해 마련한 집이다. 주변에 논과 밭이 있다. 그런 그들에게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건 어쩌면 풍비박산을 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도 어른들이 택일한 날짜에 이사를 했다. 길일에는 이삿짐센터 비용이 비싸진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대학 때부터 알아 수십년을 함께한 한 선배가 불쑥 내년 초 이사를 간다고 알려왔다.
제주도 출신인 아내를 따라 제주도에 자리를 잡을 생각이란다. 정작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그의 아내도 대학 시절부터 서울로 올라온 이후 쭉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서울 출신으로 한번도 이곳을 떠나본 적 없는 서울내기가 타지에서 잘 살 수 있을까 모두 걱정했다. 대뜸 거기에서 어떻게 살 거냐고 물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구상해왔던 이야기를 요목조목 들려주었다. 그것은 귀향도 아니었고 낭만적인 전원 생활도 아니었다. 그는 몇 차례 제주도를 오가면서 관광 제주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사는 내년 신정과 구정 사이에 할 생각이다. 귀신을 속여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음력과 양력 날짜 하나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는 귀여운 귀신 이야기에 우리는 걱정도 잊고 소리내 웃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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