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에는 14세기 초 유럽의 수도사들이 '아랍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도원 사서들에게 '아랍어 해독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됐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아랍어를 중세유럽의 공용어인 라틴어로 번역했다는 것은 서유럽인이 이슬람에게서 뭔가 배웠음을 뜻한다. 장미의>
르네상스 바탕은 이슬람 학습
"대체 서유럽이 아랍에게서 뭘 배운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근대 이후 서양문명이 이슬람을 압도했던 까닭에 우리 뇌리에는 '이슬람문명은 서양문명보다 뒤떨어진 문명'이라는 '부정적 고정관념'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유럽이 이슬람보다 우월하다는 시각은 '최근 수백 년 동안'형성된 것이다. 서기 7세기 이후 500년 동안 이슬람은 고대 그리스의 과학ㆍ철학을 번역ㆍ소화함으로써 서유럽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문명을 건설했다. 이슬람은 단순히 그리스 학문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독창적으로 끌어올렸고, '야만 상태'의 서유럽은 12세기 이후 이슬람 학자들이 소화한 그리스 학문을 라틴어로 번역해 받아들임으로써 문명을 도약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대표적 사례다. 유럽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그리스어→라틴어'로 직접 번역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어→아랍어→라틴어'로 중역(重譯)된 텍스트를 통해 처음 접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기독교에 융합시킨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철학은 이렇게 탄생했다. 역사가들이 '12세기의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서유럽의 번영은 이슬람의 학문적 성취를 번역하지 않았다면 이룩될 수 없었다.
이슬람이 7세기에서 12세기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문명을 건설했고, 야만 상태의 중세 유럽이 이슬람을 스승으로 받들었다는 것은 돌고 도는 역사의 냉엄한 진실을 일깨워준다. 눈 여겨 볼 대목은 이슬람과 중세 서유럽의 번영이 공통적으로 '번역'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슬람은 그리스 고전 번역을 통해 중세 초기에 번영을 누렸고, 유럽은 아랍어로 번역된 그리스 고전을 라틴어로 중역함으로써 12ㆍ13세기의 화려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번역이 역사 변혁의 지렛대로 작용한 것이다.
도올 김용옥은 하버드대학 중국학 박사학위 논문의 반 이상이 번역으로 점유되고 있다고 밝힌다. 혹자는 서양 사람들이 동양학에 대한 소양이 없으니까 번역밖에 못 한다고 빈정댈지 모르나, 지난 100년 동안 우리가 그들을 배운 것보다 그들이 우리를 배운 태도가 훨씬 더 철저하고 치밀했다는 것이다. 부인하기 힘든 말이다.
어디 미국뿐인가. 독일과 프랑스의 대학에서도 한국학 전공 석사ㆍ박사 학위논문의 절반 이상은 번역으로 채워지고 있다. 번역이야말로 외국학 연구에서 가장 먼저 행해야 할 기초공사다.
미국과 유럽에서 동양학(중국학과 한국학) 석사ㆍ박사 학위논문 절반 이상이 번역으로 점유되고 있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떠해야 할까. 그들에게 동양문명이 외래문명이듯이 우리에게는 서양문명이 외래문명이다. 그들에게 동양학이 외국학이듯, 우리에게는 서양학이 외국학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동양 연구를 번역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서양 연구를 번역으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
번역을 연구로 보지 않는 우리
그들이 외래문명을 자신들의 언어로 문헌화해 자국의 지식과 정보를 끝없이 확충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또한 세계의 정보와 지식을 우리의 모국어로 문헌화 해 축적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 후손과 모국어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 땅의'인문학자라면 마땅히 번역을 학문의 기초공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번역을 연구업적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우리 학계도 이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된 것 아닐까.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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