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내일 북한이 또 다시 댐을 방류한다면? 4,000만톤이 아니라 이번엔 그 이상, 혹은 최대 9배에 달하는 물을 한꺼번에 내려 보낸다면?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북한의 예고 없는 댐 방류가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이 경우, 현 시스템 하에선 제2의 임진강 참사가 재연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의 대량 댐 방류에 대처할 수 있는 하드웨어(댐)도 부족하고, 소프트웨어(재난관리체계)도 허술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7일 관계당국과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부가 홍수조절용으로 건설중인 임진강 유역의 군남댐과 한탄강댐 2곳으로는 북한의 인위적 방류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이번 방류의 진원지로 추정되는 북한 황강댐은 최대 저수량이 3억5,000만톤에 달하는 대형댐. 이에 비해 한탄강댐과 군남댐은 각각 2억7,000만톤과 7,160만톤으로, 북측 댐에 비해 저수량 면에서 절대 열세다.
그나마 한탄강댐은 임진강 본류와 수계가 달라 황강댐에서 쏟아져 나온 물을 직접적으로 막지 못한다. 결국 황강댐의 6분의 1수준에 그치는 군남댐 하나로 버텨야 한다는 것인데, 물리적으로 치수 기능이 불가능한 셈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추가 댐 건설도 쉽지 않은 상황.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병식 선임연구원은 "기본적으로 댐(으로 인한 수해)은 댐(건설)으로 막아야 한다"고 전제한 뒤 "돌발적 홍수를 막으려면 임진강 하류에 댐을 더 지을 필요가 있지만 위치선정이나 주민동의, 환경문제 등으로 인해 추가 건립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하드웨어가 부족하다면, 소프트웨어라도 완비되어야 하는데 상황은 정반대다. 이번 사고에서도 드러났듯이, 임진강의 재난관리 체계는 치명적 문제점을 노출했다.
현재 임진강 일대 하천유량 관리를 맡고 있는 기관은 해당 지자체를 비롯해, 한강홍수통제소와 한국수자원공사. 그러나 ▦수자원공사는 수위 3m, 5m, 7m를 기준으로 각각 경계ㆍ대피ㆍ중대피경보에 들어가는 반면 ▦한강홍수통제소는 수위경보시스템 위치에 따라 9.5~11.5m 초과시 '주의보'를 발령하는 등 위험경보기준이 제각각이다.
특히 임진강 수위를 놓고 수자원공사와 한강홍수통제소, 관할 연천군청이 크로스체크를 하게 되어 있는데, 누구도 이번 사고발생을 감지하지 못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차제에 일반 홍수에 대한 경보시스템 외에 일부 도심 하천에서 시범적용중인 돌발홍수에 대한 예보시스템을 남북 공동수역에 확대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토연구원 김종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북측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갑작스런 방류와 같은 돌발사태를 막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것은 공유하천인 임진강에 대한 남북한간 공동관리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지만 현 남북관계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결국 이번 참사의 일차적 책임은 방류당사자인 북한이겠지만, 우리당국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날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성진ㆍ송광호 최고위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응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하고 책임자도 엄중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의 참사를 막으려면 남북간 협의체계 구축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되, 이와는 별도로 추가 댐 건설을 포함한 하드웨어적 보완과 관리기관간 공조체계구축 등 소프트웨어 재정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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