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었다고 한다. 취임 직후 불어 닥친 촛불시위 이후 줄곧 지지율이 20~30%로 바닥을 기어온 청와대로서는 무척 고무된 모양이다.
경기호전과 남북관계 개선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최근의 중도실용ㆍ친서민 행보가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념적 중도층과 40대의 지지가 가파르게 올랐다는 조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에 청와대와 내각개편 등의 인사가 별 잡음 없이 이뤄져 다른 돌발 변수가 없다면 40% 안착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대통령의 노선 변화는 그 동안 보여온 행태와 거리가 있다. 용산참사와 부자감세, 비정규직 문제 등에서 편향적인 보수이념을 유감없이 드러낸 터라 진정성이 의심받는다. 친서민 정책들이 실제 얼마나 실효성 있는 성과를 낳을 것인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부자들을 위한 정권, 법과 원칙만 강조하는 독선적인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희석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급해진 것은 범진보세력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친서민 정책이 야권 등 진보세력의 지지층을 흡수해 설 땅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떠난 후 구심점 상실에 따른 민주개혁세력 전반의 퇴조를 염려하는 이들도 많다.
정작 범진보세력의 위기의식은 2012년 대선에서 간판으로 내세울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실제 한 여론조사에서 차기지도자를 조사한 결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지지도가 야권에서 거론되는 후보의 지지율 합계를 넘어섰다. 야권성향으로 알려져 온 정운찬씨가 총리로 기용돼 야권의 잠재 대선 후보군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음 대선에서 야권의 백전백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전망이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분열로만 치닫던 진보진영 제 세력이 최근 들어 통합을 모색하는 것은 그런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야권 대통합을 기치로 내건 시민사회단체들이 속속 결성되는 것도 진보세력의 연대를 바라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도 그랬듯이 통합 과정에서 내년 지방선거나 그 후를 겨냥해 공천과 당직 등 지분싸움에 매달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벌써부터 민주당에서는 통합의 우선순위를 놓고 내분양상 마저 보이고 있다.
지금 진보세력에게 시급한 것은 단순한 물리적 통합보다는 진보로서의 가치 창출이다. 더 이상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위한 비판은 먹혀 들지 않는 상황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지 않으면 민주개혁세력의 생존이 위협받을 처지에 내몰렸다.
지난 대선에서 야권은 "진보개혁 진영은 무능하다"는 보수세력의 공세에 밀려 좌초했다. 남북화해, 탈권위, 지역주의 타파 등에서는 나름대로 진전이 있었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서는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대중들은 무능한 진보세력을 철저히 외면했고 결국은 신자유주의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한마디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진보세력의 역량 결집은 몸피를 늘리기보다는 새로운 대안이 될 가치를 함께 모색하는 데서 찾는 게 옳다. 신자유주의가 촉발한 청년실업과 중소기업, 자영업자 문제,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진보진영이 도덕성뿐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도 유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살길임을 속히 깨닫기 바란다.
이충재 부국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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