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누가 소외되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세계화는 경제적인 프로젝트인 동시에, 윤리적·도덕적 차원의 프로젝트로도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탈식민주의 이론의 세계적 권위자인 호미 바바(60) 미국 하버드대 인문학연구소장이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초청으로 3일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바바 교수는 자크 라캉, 에드워드 사이드 등과 함께 탈구조주의 문화이론을 대표하는 학자로 시카고, 런던대 등을 거쳐 2001년부터 하버드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5년 뉴스위크에 의해 '차세대 미국인 100인'에 뽑힐 정도로 정교한 학문체계뿐 아니라 왕성한 사회적 발언도 평가받는다.
그는 4일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APCEIU)과 이화여대 탈경계인문학연구단이 각각 주최한 세미나에 잇달아 참석, 지구촌이 당면한 현실을 대상으로 한 전방위적 사유의 결과를 선보였다. 세계화와 극단적 폭력, 다문화적 혼융 등 현대 사회의 혼란을 헤쳐갈 방편으로 바바 교수는 "거대 담론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성찰과 변혁을 추구하는 인문학적 사고"를 제시했다.
바바 교수는 난해한 탈구조주의 이론보다는 세계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논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그는 세계화를 "로마로부터 21세기까지, 역사의 과정 속에 되풀이되는 흐름의 하나"로 파악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윤리'라는 부분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얼마나 많이 수출하고 수입하느냐, 얼마나 많은 NGO의 네트워크를 갖느냐보다 각국에서 온 외국인을 어떻게 취급하느냐" 하는 척도가 "세계화의 수준과 윤리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바바 교수는 세계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지속가능성, 그리고 평등과 함께 추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세계화의 역기능에 시달리는 신생 개도국들은 탈식민지 과정과 냉전 상황을 거치며, 발전이 덜 된 상태에서 세계화의 도전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20세기 초의 식민의 유산을 간직"한 상태에서 "IT 혁명을 찬양하고 글로벌 마켓의 유연화를 찬양하는 흐름"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바바 교수는 그러나 "지구가 평평하고 공평하다는 생각의 반대편에는 유례없는 차별과 고통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세계화와 함께 현대 사회의 특징을 상징하는 '다문화'에 대해서는 "평등한 입장에서의 포용적 관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월한 문화는 없다는 전제 하에, 문명충돌 같은 아이디어를 버려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는 20세기 중반 조국인 인도에서 보낸 유년기와 청년기의 경험으로 설명을 보탰다. 그가 태어나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의 시간은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의 혼란과 파키스탄의 분리 과정에서 빚은 갈등의 시기와 겹친다.
바바 교수는 "그 시절은 긍정적 감정과 적대감을 동시에 일으키던 시기였다. 탈식민지운동의 반대편에서는 유럽의 아방가르드 문화를 흡수했다. 한편으로는 굉장한 소속감을 느끼면서, 또 한편에선 나 자신의 존재 근원에 의문을 제기하는 아이러니한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역사의 문은 열려 있지도 닫혀 있지도 않고,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며 "무엇을 들여보내고, 내보낼지를 결정하며, 민주주주의 취약한 점을 보완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합리주의의 관념으로 구성된 현대 정치에 내러티브, 혹은 감성의 언어를 가미할 것도 제안했다. "세계화, 문화 정체성 등과 관련해 너무 단순화·도식화한 개념들은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형식의 올가미와 차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바 교수는 "모든 유전자, 모든 문화는 고유한 이야기와 역사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모두가 주체가 될 수도 객체가 될 수도 있다는, '세계적 회의'(global doubt)로부터 출발하는 인문학의 필요"를 강조하며 강연을 끝맺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