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보면 '정치 풍운아'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중앙정치 무대 입문 4년의 일천한 경력으로 대통령 직을 거머쥐면서 미국 역사를 바꾼 그가 불과 6, 7개월 만에 정치적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헤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지지율 추락한 '안팎 곱사등이'
1월 취임사에서 '새로운 미국'을 역설하던 그와, 여야의 정략적 대립에 갇혀 꼼짝도 못하는 지금의 그가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다. 취임 직후 70~80%대를 오르내리던 지지도는 정확히 6개월 만인 7월 말 50% 밑으로 떨어졌고, 이후 '신저가'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정권 초기의 '허니문'이 유지될 수는 없겠으나 오바마처럼 급격하게 추락한 미 대통령은 없었다. 해리 트루먼, 제럴드 포드, 빌 클린턴 정도가 집권 첫 해 지지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 지도자들이지만 이들도 6, 7개월 성적은 이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 미 언론들은 이런 국론분열이 계속되면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에서 최소 20석 이상을 잃어 다수당의 지위가 위협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오바마 앞에 꼬인 난제들을 보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한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은 병력 증파가 불가피하다는 현지 미 사령관과 이에 반대하는 의회와 여론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고, 건강보험 개혁 역시 극한 정쟁만 부르며 표류하고 있다. 북한 및 이란 핵문제, 이라크 주둔 미군 철군,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 등 어느 것 하나 오바마의 '희망사항'대로 되는 것이 없다. 열렬한 지지자인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 같은 진보주의자들조차 그에 대해 이런 저런 '의심'을 제기하는 형편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애당초 오바마에 대한 기대가 과도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공화당의 파당적 정치공세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유진 로빈슨은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보험 방식을 포기할 듯한 입장을 오바마가 비치자 "우리는 그저 그런 대통령을 얻기 위해 오바마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가 위대한 대통령이 되라고 뽑았다"며 진보파의 정서를 대변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 철군 등의 지연이 실제 이상 문제가 있는 것처럼 부풀려진 것도 '슈퍼맨' 오바마를 기대했던 것과 무관치 않다.
이는 오바마가 통치철학을 '통합'에 둬야 하느냐 '개혁'에 맞춰야 하느냐 하는 논쟁으로 이어진다. 통합을 주장하는 측은 건보개혁 등에서 의회와 여론을 무시한 강행처리는 국민의 저항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하는 반면, 개혁을 외치는 측은'워싱턴을 바꾸겠다'는 초심을 버릴 경우 오바마의 정통성은 사라진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안팎 곱사등이 신세가 된 게 지금 오바마의 처지이다.
전환기적 지도자 되기 어려워
공화당의 파당적 정치행태는 더 우려스럽다. 지금의 건보체계를 만든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사실 처음에는 오바마보다 더 강력한 공공보험을 제안했다. 보험사 규제 강화와 적정한 요금 체계 등은 공화당원인 닉슨조차 "시장이 만능은 아니다"라고 판단했기에 가능했다. 그랬던 공화당이 닉슨의 복사판이라 할 수 있는 오바마의 건보개혁을 한사코 반대하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데올로기로 가득 찬 지금의 공화당은 오바마의 험로를 예고한다.
크루그먼은 최근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썼다. "전환기적 지도자가 되는 것은 TV 앞에 자주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특히 이렇게 망가진 정치 시스템에서는."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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