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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일본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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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일본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

입력
2009.09.0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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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절이 있었다. 최신 소니 워크맨을 산 친구들이 온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유럽이나 미국에 나가 보면 관광지가 단체 관광을 나온 일본 사람들로 점령되어 있고, 서점의 비즈니스 코너는 일본을 배우자는 책들로만 넘쳐나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미국의 땅을 많이 사들이는 바람에 곧 미국이 일본 소유가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우습게만 들리지도 않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세계 휩쓸던 일본경제 지금은

정말 그런 때도 있었나 싶지만 불과 20년 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본의 경제는 완벽 그 자체였다. 일본 경제가 언제까지나 잘 될 수만은 없다는 식의 말을 누가 하기라도 하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취급 받는 분위기였고, 당시 미국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철저한 경쟁에 입각한 미국식 경제제도보다 종신 고용으로 상징되는 동양적인 일본의 경제제도가 더 나은 것이 아닌지에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이제 소니는 절대로 따라 하면 안 될 회사의 대명사로 바뀌었고, 일본을 보고 배우자는 이야기는 어느 곳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최근 일본 자민당이 54년 만에 선거에서 패배하여 야당이 되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당선에 이어 벌어지고 있는 세계적인 변화의 하나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이전 고이즈미 총리의 시장 지향적인 경제 개혁이 빈부 격차를 크게 늘린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고도 보는 것 같다.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을 전공하는 내 입장에서는 20년 전부터 기울기 시작한 경제에 대한 책임을 일본 국민들이 이제야 묻는 것으로 보인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더니 부자 일본은 망하고도 20년을 간 셈이다. 이제 좋은 시절 곳간에 쟁여놓은 양식도 다 떨어지자 국민들이 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때때로 들러 본 일본은 내게 두 가지 상반된 면모를 보여주었다. 첫째는 도요타, 닌텐도 등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민간 기업들이었고, 둘째는 인구 몇 만의 시골 마을에 들어선 텅 빈 신칸센 열차역과 관광지로 개발한다고 전국 천지 사방에 온천을 뚫어 놓은 지방자치단체로 대표되는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정부 및 공기업 부문이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도요타 자동차, 닌텐도 게임기, 토시바 노트북과 같이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는 일본 경제가 어째서 어려울까 궁금할 수 있다. 하지만 도쿄 시내의 큰 일본 은행에서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여행자 수표의 환전을 거절 당한 경험이 있거나 식당 또는 호텔에서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일본 경제가 버티고 있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공공부문과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받는 폐쇄된 금융부문이 결국 일본 경제의 발목을 20년 동안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일본은 단기적으로 심각해진 빈부 격차 문제를 해결하면서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을 개혁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역시 이웃나라 일본의 어려움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보고만 있을 느긋한 처지는 아닌 듯하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정부의 지출을 늘려 비교적 잘 피해 나가고 있으며 서민들을 위한 대책도 동시에 시행하여 일단 단기적인 어려움을 잘 넘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혁 미루면 우리도 번영 못해

그러나 이런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성공에 취해 있을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현 정부가 집권 당시 약속하였던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의 개혁을 추진하지 않고서는 한국 경제의 장기적 성장과 번영이 이루어질 수 없다.

20년 전 세계 제패를 눈 앞에 둔 듯 보였던 일본 경제도 결국 개혁을 미루던 끝에 쇠퇴의 길을 걷고 말았다. 이런 일본의 잘못을 따르지 않기 위해서는 개혁을 향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우리 국민들의 슬기가 필요하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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