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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내면의 목소리 듣는 길 위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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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내면의 목소리 듣는 길 위의 시인

입력
2009.09.0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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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지음/문학동네 발행·258쪽·1만3,000원

여행은 딱딱한 일상에 억눌려 있던 내 속의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솔직한 언어로 독자들에게 자신의 내면을 개방해온 최영미(48)시인. 정작 그는 어떻게 자기 자신과 만날까? 그것은 여행이다. 시인은 여행을 통해 절망과 외로움을 치료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는 최씨가 1996년 홀홀단신으로 찾았던 독일 쾰른부터, 올해 봄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까지 10여년 동안 유럽, 미국, 일본 등지를 여행하며 느낀 단상들을 묶은 에세이집이다. 길 위의 시인은 자아도취와 자기연민 사이를 위태롭게 줄타기하며 일상에서 만나지 못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대면한다.

가령 2006년 봄 도쿄, 프랑크푸르트, 마르부르크, 파리, 리옹, 몽펠리에로 유럽의 도시들을 강행군하던 그는 파리의 한 세탁소에서 열흘 만에 속옷을 빨면서 불현듯 이런 각성에 다다른다."평소 내 몸이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나이 마흔다섯에 혼자 짐가방을 끌고, 단 하루도 미리 잘 곳을 정해놓지 않고, 육신을 뉘일 곳을 찾아 낯선 땅을 헤매는 미친 짓을 감당하는, 나는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니다."

기껏해야 별3개짜리 호텔, 싸구려 숙소를 오가면서도 잠자리의 불편함을 탓하는 자신의 모습은 얼마나 비루한가. 그는 갑자기 '여행'과'일상'이 포개지는 체험을 한다."별 하나에 깨끗한 호텔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접지 못하는, 나는 현실감각이 모자라는 낭만주의자"다.

기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럽과의 만남은 곧 그림, 건축과의 해후이기도 하다. 다빈치, 고흐, 가우디, 코레조에 이르기까지 유럽 미술품과 건축물에 대한 감상기에서는 서양미술사학도의 심미안과 시인의 감수성이 어우러진 특유의 강렬한 에너지의 문장을 만날 수 있다. 자살하기 직전 봄 정신병원에 수용된 고흐가 그린 강렬하고 거친 터치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를 감상하던 최씨는 실명 위기의 박수근이 그린'목련'을 떠올린다. 그리고 탄식한다."고통의 끝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이 탄생했다는 이 역설. 그게 바로 예술이 아니던가."

장선우 감독의 '꽃잎'과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일 포스티노', 바흐와 현대 성악가 바르톨리 등 영화와 미술, 음악에 관한 예술론인 책 후반부의 글들도 음미할 만하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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