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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소통과 학문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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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소통과 학문윤리

입력
2009.09.0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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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개봉되었던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는 꽤 알려진 영화에 속한다.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정신분열증에 걸린 한 천재의 기구한 운명에 안타까워하는데, 그는 노인이 되어서야 평생을 괴롭힌 정신병에서 평화를 얻게 된다. 그의 수학적 업적이 경제학에 미친 영향력이 인정되어 66세가 되던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는 대목은 눈시울을 적실만큼 감동적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실존 인물인 존 내쉬(John Forbes Nash) 박사이고, 올해 81세인 그는 아직 생존해 있다. 영화의 속성상 사실과 픽션이 섞일 수밖에 없지만, 큰 틀은 실제에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아들인 존 내쉬 주니어도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정신분열증까지 물려받았다.

그의 아내 알리시아는, 법적으로는 중간에 이혼한 후 재결합했지만, 평생을 남편과 아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어쩌면 내쉬의 노벨상 수상은 그녀가 싸움에서 승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쉬 박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암호해독과 관련한 미국 해군 연구 프로젝트에 여름방학 인턴으로 참여했는데, 천재적 기여를 인정 받아서 그 뒤에도 연구과제에 참여를 요청 받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암호해독이나 새로운 암호설계, 인터넷 시대에서의 정보보안 등에 수학자들이 기여한 사례는, 2차 세계대전 기간부터 오늘날까지 그 역사가 길다.

내쉬 박사에게 노벨 경제학상의 영예를 안겨준 연구 업적은, 그가 프린스턴 대학에서 수학분야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쓴 학위논문의 내용이다. 22살 때였으니 참 대단하다. 이 논문을 통하여 그가 밝혀낸 것은 '내쉬 평형(Nash Equilibrium)'이라고 불리는 개념인데, 현대 게임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이제는 경제학이나 사회학 등에서도 중요 연구도구가 되었으니, 수학의 응용과 영향력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넘어선다.

이런 특이한 개인사와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면, 병과 싸우던 수십 년의 기간 동안 세인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지는 게 상식적이다. 그의 초기 업적도 지극히 수학적이었으므로, 이를 경제현상에 성공적으로 적용하고 발전시킨 경제학자들이 공로를 차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내쉬 박사는 장구한 기간 동안 주요 연구결과도 내지 않았다.

여기에서, 학문적 공과를 분명히 하고 표절을 범죄와 동일시하는 엄정한 학문 전통이 중요한 이유를 본다. 학자들의 표절 이야기가 자주 지면에 오르는 우리 현실에서, 학문윤리 문제를 공론화하고 전통을 수립하는 게 필요한 이유도 본다.

엄격한 학문적 공로 판단의 전통과 함께, 80년대 말부터 정신이 온전한 시간에 세상과 소통하려는 각고의 노력을 한 그의 태도도 중요했다. 이메일 일반화의 초입이던 당시에, 그는 이메일을 통하여 수학자 및 경제학자들과 학문적 토론을 진행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존 내쉬가 살아있음이 알려졌고, 그가 새로운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내기 시작한 것도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그와 토론을 진행한 학자들이 그의 노벨 경제학상 후보 추천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2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국제수학자대회 기간에, 중국측 조직위원회는 내쉬 박사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마련한 적이 있다. 무려 5,000명이 넘는 청중이 운집하여 그의 강연을 경청하였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로는 제한적인 편이지만, 그는 세상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고 있는 것이다.

박형주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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