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주당의 정권교체가 한일관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은 틀림없다. 지금까지의 한일관계는 한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타협을 모색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본이 54년 만에 야당인 민주당 정권으로 교체되면서 일본으로부터 외교정책에 대한 새로운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즉 민주당 정권은 한국이 관심을 가질만한 전향적인 주장들, 예를 들면 야스쿠니를 대신할 추도시설 건립, 지방참정권의 실시, 위안부문제 해결 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외교 전환에 기대감 커져
외교정책에서 또 하나 두드러진 점은 자민당 정권과는 달리 '대등한 미일관계'를 주장하면서 아시아 중시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 정권 시기의 외교는 아시아와 다소 불편한 관계에 있더라도 미일관계만 좋으면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 예로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 문제로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정상회담조차 거부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미일관계를 강조하면서 일본 외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반면 이번 민주당 정권은 아시아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미일관계에서는 균형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외교에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것이다. 이런 일본 민주당의 정책 전환은 한일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게 틀림없다. 게다가 민주당 지도부의 전향적인 역사인식과 그들이 보여주는 한국에 대한 친근감은 한국이 민주당에 거는 기대를 증폭시키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민주당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오히려 실망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민주당의 전향적인 주장들이 실제 정책으로 실현되느냐 여부이다.
이는 민주당 정권의 정치적인 상황과 많이 관련돼 있다. 민주당 정권이 내년 7월 참의원선거까지는 '뜨거운 감자'가 되기 쉬운 새로운 외교 정책을 실현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한일관계에서는 하토야마 총리가 정상회담 등을 통해 지금보다는 전향적인 역사인식을 표명할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 내에서 이견이 있는 지방참정권의 실시, 추도시설의 건립 등에 하토야마 총리가 리더십을 발휘할 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내년 참의원선거 이후에도 민주당이 외교정책의 변화를 시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정권은 앞으로 선거가 있을 때까지 3년에서 4년은 지속되겠지만, 점차적으로 재원조달의 문제, 그리고 관료와의 대립 등 많은 갈등을 표출하면서 정권 지지율이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의 외교정책에서 전향적인 주장은 점차 꼬리를 감추기 쉽다.
그리고 자민당이 민주당과 어떠한 정치적 대립 축을 지향하는 지도 한일관계의 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약 자민당이 매파로 뭉쳐져 외교정책에서 비판적인 공세를 취하면 민주당 정권은 수세적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민주당 정권하의 한일관계는 '말'이 우선되면서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지혜 모아야
당장 한일관계에서 민주당 정권에 대한 1차 시험은 이번 가을에 발표될 예정인 고교 교과서 해설서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는 앞으로 한일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의 한일관계 전략도 시험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한일관계를 단기적이고 양국 간의 관계로만 해결하려고 하면 당장 갈등과 실망만 생길 것이다.
민주당 정권의 전향적인 외교정책 실현을 돕기 위해서는 한국이 국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일관계의 전략을 모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즉 미국 중국 북한 등의 국제관계 속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야 하며, 역사문제에서는 인내도 외교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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