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의 기세가 한풀 꺾인 듯하다. 우리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여러 나라도 8월 초ㆍ중순을 고비로 환자가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러나 기온이 떨어지는 10월부터 다시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려 크리스마스께 절정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예방 백신 접종이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가 됐다. 신종플루 백신은 이제 막 개발돼 서둘러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때문에 제때 충분한 백신을 확보할 수 있을지, 또 부작용 등 안전성에 문제는 없는지, 이런저런 논란이 많다.
■그런데 나라 안팎의 논란은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 있다. 우리는 백신 부족을 지레 걱정하는 반면, 다른 나라는 거꾸로 접종 기피를 염려하는 모양이다. 이를테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며칠 전 "백신 접종이 강제는 아니지만 강력히 권고한다"며 의료ㆍ방역 요원들부터 접종을 받아야 할 책임을 강조했다. 바이러스 감염과 전파 위험에 노출된 의료ㆍ방역 요원들이 백신의 필요성이나 안전성을 일반인보다 믿지 않는 데 따른 것이다. 영국 캐나다 홍콩 등에서도 많게는 60% 이상의 의사들이 백신의 필요성과 안전성을 낮게 보고 접종을 원치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나라마다 '접종 홍보'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내년 2월까지 백신 1,336만 명분을 확보해 우선순위에 따라 접종하겠다고 밝혔다. 전 국민의 27%에 해당하는 숫자다. 국내에서 600만 명분을 생산하고, 부족한 양은 수입할 계획이다. 그러자 정치권에서부터 "나머지 국민은 어떡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나라당 이애주 의원은 응답자 82%가 백신 접종을 희망한 여론조사 결과를 앞세워 "국민 4,000만 명이 접종을 원하지만 2,666만 명분이 모자란다"고 지적했다. 언론도 "심각한 백신 부족 사태가 우려된다"고 거든다.
■이러니 접종 우선순위를 논란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의료ㆍ방역 요원을 1순위로, 임신부와 영ㆍ유아 및 만성질환자 등 고위험군을 다음으로 잡고 있다. 모든 나라가 비슷하다. 그러나 민주당 김춘진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예방접종심의위원회 자문을 거쳐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옳으냐"며 사회적 공론화를 주장했다. 공청회와 국민투표라도 하자는 말인지 의아하다. 섣부른 논란은 불안감을 부추길 뿐이다. 건강한 사람은 '국민행동요령'을 잘 지켜 '바른 생활'을 하는 것이 면역력을 높이는 최선의 방책이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함께 귀 기울일 일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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