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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포기 힘든 유혹, 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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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포기 힘든 유혹, 야식

입력
2009.09.0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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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지 말라는 일은 더 하고 싶은 걸까. 건강에 좋지 않다는 튀김이나 고기는 더 먹고 싶고, 해롭다는 술이 입에 달고, 착한 여자들은 이기적인 남자들에게 끌리며, 기교를 부릴 줄 모르는 남자들은 여우 같은 처자들에게 반한다.

자외선이 피부에 나쁘다 해도 말간 햇볕 아래 일부러 살갗을 태우게 된다. 몸에 그렇게 나쁘다는데 입에는 달달하기만 한 '야식'도 그렇다. 먹지 말라고들 하는데 자꾸 먹게 된다.

왜 늦은 밤 먹는 음식은 맛이 더 좋을까. 일단 생활이 너무 바쁘다는 것도 야식을 찾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직장을 다니거나, 육아에 매이거나 하면 아침과 점심, 저녁의 구분 없이 허기를 채우게 된다.

아침밥을 찾아 먹기도 빠듯하게 하루가 시작되고, 오전 시간이 지나가버리면 한 술 챙겨 먹는 것이 점심밥이다. 야근이라도 하면 느긋한 저녁을 먹는 일은 이미 물 건너가는 거다. 팀원들끼리 A4용지에 사다리를 그려 타는 게임으로 각출한 500원, 1000원을 모아 김밥을 사다 먹든지 한다.

엄마들도 아이들 목욕시켜 재우기 전까지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 학생들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요즘 학생들 입시에 취업에 자기 개발에 숨 쉴 틈 없다. 늦은 밤 학원가 앞이나 버스 정류장의 야식 트럭에서 떡볶이 먹는 학생들을 보면 가슴이 짠하다.

학생이든, 아기 엄마든, 샐러리맨이든 하루를 열심히 살다가 한 숨 돌려 무어라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그러니까 밤이다. 남은 밥을 볶을까, 참기름이랑 깨소금 김부스러기 솔솔 뿌려 비빌까, 동네 걸어 나가서 국수나 한 그릇 먹고 올까. 질척한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순대 내장도 맛있겠고, 다 관두고라도 어묵 한 꼬치만 먹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 10시반.

동네 뒷골목 야식집에 앉아 멸치국물에 만 국수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자면 그 시간에야 겨우 여유를 얻은 이들이 혼자서, 둘이서 허기를 달래려 들른다. 전작으로 거나하게 취한 한 팀의 손님들이 시원한 멸치 육수로 속을 푸는 동안, 슬리퍼 차림으로 들른 주민들은 눈인사를 나누고 국수를 먹는다.

일순간 국숫집이 조용해진다. 술기운에 삼삼오오 몰려온 이들도, 괜히 헛헛한 밤을 달래러 나온 주민들도 뱃속 가득 퍼지는 따뜻한 기운으로 하루의 긴장이 풀린다.

내일 아침 얼굴이 붓고 속이 거북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야식 한 입의 아늑함은 포기가 힘들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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