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방송의 날이었다. 방송의 날,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방송이 처음으로 나타난 날일까. 애석하게도 9월 3일은 우리나라에서 방송전파가 최초로 발사된 날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은 1926년 2월 16일 개국한 경성방송국이다. 이 방송국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것이기에 우리 것이라고 보지 않아 2월 16일을 방송의 날로 기념하지 않는다. 경성방송국이 사용했던 JODK라는 콜 사인은 일본에게 할당된 전파 호출부호이다. 보통 이 콜 사인의 앞 두 글자가 특정 국가를 나타낸다.
따라서 JO가 일본 고유의 콜 사인이고 경성방송국 JODK는 알파벳 순서로 따져 일본에서 4번째 방송국인 셈이다. 전파는 특성상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들 수 있어 전파에 그 발신지가 어디인지를 알게 하는 국가 고유의 콜 사인을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할당한다. 따라서 모든 주권국가는 특정 콜 사인을 할당받고, 이것이 전파주권을 대표한다.
우리나라의 콜 사인은 HL이다. 해방 후 독립국가로서 당연히 전파주권도 찾아와야 하기에 고유의 콜 사인을 배정받았다. HLKA, 지금의 KBS1 라디오가 HL 콜 사인으로 Korea(K)에서 첫번째(A)로 방송한 한국 국적 방송이다.
해방은 1945년에 되었지만 전파주권은 2년 후인 1947년 찾아와 그 해 10월 2일 감격스러운 전파독립의 날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이 날이 방송의 날이어야 하는데 왜 9월 3일인가? 9월 3일은 이역만리 미국 애틀랜타에서 ITU가 당시 신생 독립국인 한국에게 HL이라는 호출부호를 할당하기로 결정한 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64년 9월 최초로 제정된 방송의 날은 10월 2일이었다. 그런데 전파주권을 실질적으로 회복한 시점이 콜 사인을 배당받은 날이라는 이유로 1978년부터 지금의 9월 3일로 변경해 시행하고 있다.
이것은 공식 기록이고 방송계 항간에 떠도는 '설'에 의하면 당시에는 10월 1일 국군의 날이 공휴일인데 10월 2일이 방송의 날로 쉬는 날이 되면 10월 3일 개천절까지 놀게 되어, '아니 이것들이'라는 이유에서 바뀐 것이라고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생일을 생일로 쇠지 못하는 처지를 우리는 기구한 팔자라고 한다. 우리나라 방송이 이 모양이다. 이렇게 기구한 팔자를 타고 났으니 방송의 운명 또한 평온할 리가 없었다.
정치권력에 휘둘리고, 경제권력에 끌려다니고, 뭐 뒤에 무슨 무슨 권력이란 말만 붙으면 방송을 좌지우지해 지금처럼 어지러운 '이 풍진 세상'을 만들었다. 방송인들은 그 동안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저항도 했고 한편으로 일정한 성과도 얻었다.
그런데 자신들의 생일이라고 경축해야 할 날을 아주 이상한 이유로 독재정권 시대에 바뀐 9월 3일 그대로 경축하고 있으니 문제다. 아마 자신들이 이렇게 기구한 팔자를 타고 났다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해 우리나라 방송 드라마에서 그렇게 많은 출생의 비밀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나보다.
이제 국군의 날은 더 이상 공휴일이 아니고 세태도 많이 바뀌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는 못하지만 진정한 생일을 생일이라고 부를 수 있게 방송의 날을 다시 제정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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