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의 정책들을 신랄하게 비판해온 시사평론가 진중권씨가 며칠 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새 학기 홍익대 강의를 못하게 된 사실을 알렸다. 앞서 진씨는 중앙대 겸임교수 자리에서도 쫓겨났다. 올 들어 카이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이어 네 번째 강단'축출'이다. 진씨 본인도 말했듯이 이를 단지 우연이라고 하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해당 학교들이 내세운 이유들도 군색하기 이를 데 없다. 진씨 스스로 그 자리들에 연연해 하지 않는 듯하고, 계약의 일방이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하니 법적으로 대항할 만한 사안도 못돼 논란이 더 확산될 것 같진 않다. 진씨의 강의를 듣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반발하지만 학교 당국이 입장을 바꿀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반발하는 학생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징계하겠다고 하는 판이다.
진씨 개인에 대한 평가는 뚜렷하게 엇갈린다. 진씨의 주장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반대 쪽도 적지 않다. 그의 말들에 수긍하면서도 말투나 태도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상당수인 것 같다. 그러나 진씨의 잇단 강단 축출은 그에 대한 호ㆍ불호와 상관없이 민주사회의 근간인 다양성을 부정하는 조치들이라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어느 곳보다 자유롭고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할 대학사회마저 정권 코드 맞추기에 급급하다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몇 달 전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민간은행의 후원사업이 갑자기 무산된 사실을 거론하며 국가정보원의 개입 의혹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나는 박 이사에 대한 사회적 평판을 신뢰하면서도 어쩌면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거나, 예외적인 경우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국정원이 개입했다기 보다 은행 측이 정권의 기류를 감지하고 과잉행동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일련의 석연찮은 사건들을 돌아보면서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사안이 아니라, 무언가 '보이지 않는 손'이 광범위하게 작용하고 있을 수 있겠다는 의심이 커졌다. 올해 초 법원에서 무효 판결이 난 부산 동의대 신태섭 교수의 해임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을 쫓아내기 위해 당시 KBS이사인 신 교수를 먼저 학교에서 쫓아낸 정권의 치밀한 시나리오로 해석하는 것이 결코 무리가 아니다.
정 전 사장을 비롯해 현 정부 들어 문화부 산하 단체장들의 강제 퇴출 조치가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인적 청산이라면, 진 교수나 신 교수, 또 진보적 시민단체들에 대한 재정적 압박 등의 조치는 '보이지 않는 손'을 동원한 간접적 청산 작업이라 할 만하다. 그런 점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는 정권이라기보다, 지난 10년 동안의 실지를 회복하려는 보수세력의 전방위적 이념투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하지만 그 배후에 정권이 있든, 해당 대학이나 민간업체가 알아서 기었든, 그 행태는 완전히 독재시절의 판박이다. 지난 정권에서 사라졌던, 현 정권에서 되살아난 옛 권위주의 정권의 추억들이다.
'보이는 손'의 공격은 적극적 방어라도 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손'의 합법을 가장한 압박은 대응도 쉽지 않다. 이것은 또 그 효과가 특정 개인에 그치지 않고, 누구나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갖게 해 제도적 약자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든다. 까불면 다치니 조심하라는 무서운 경고가 되는 셈이다. 이것이 나의 공연한 망상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김상철 사회부장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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