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새 국무총리에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을 내정하고 법무 국방 지경 노동 여성 특임장관 등 6개 부처 개각을 단행했다. 4∙29 재보선 참패로 획기적 인적 쇄신 여론이 제기된 지 4개월여 만에 엊그제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 이어 집권 2기 국정을 이끌어갈 내각 개편을 마무리한 셈이다.
개각의 핵심은 정 전 총장의 총리 발탁이다. 개혁 성향의 정 전 총장은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의 유력한 영입 대상이었다. 대운하 사업을 강력 반대하는 등 최근까지도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에 날 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니 '이명박 캠프'의 인재 풀을 벗어나 그를 발탁한 것은 포용과 화합 측면에서 일단 점수를 줄 만하다. 청와대 참모진 개편이 회전문 인사, 돌려 막기라는 혹평을 받은 것과는 분명 다르다. 중도 좌우를 넘나든 정 총리 내정자는 이 대통령이 새롭게 국정철학으로 내세운 중도실용 및 친서민정책을 뒷받침하는 데도 적합한 인물이다.
당내 친이-친박간 계파 갈등 완화와 당정소통 강화, 지역 균형을 꾀하려 한 노력도 엿보인다. 친박계인 최경환 의원과 당 정책통인 임태희 의원을 각각 지식경제부 장관과 노동부 장관에 내정하고, 호남 출신인 이귀남 전 법무차관을 법무장관으로 기용한 것이 바로 그렇다. 인수위 시절 당선인의 대변인을 지낸 주호영 의원의 특임장관 내정은 당정간, 여야간 소통과 정치적 조율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우려되는 바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잠재적 차기 주자로 분류되는 정 총리내정자의 행보에 따라서는 자칫 여권 내 차기 경쟁과 관련해 미묘한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 여권 내 유력 차기 주자인 박근혜 의원 등이 자신들에 대한 견제카드로 보고 반발하거나 여권 내 차기 경쟁을 촉발할 경우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정 내정자가 충청 출신이라는 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충청권 끌어안기 차원에서 시도됐던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의 총리 카드가 자유선진당 내부 분란을 불렀고 정치공학적 접근이라는 비판이 비등한 상황이다.
이 대통령이 정치철학과 노선의 공유폭이 넓지 않은 정 총리내정자와 어떻게 조화를 이뤄 나갈지도 큰 관심사다.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보완한다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한복 바지에 양복 상의를 입은 격" "논에 장미를 심은 격" 등의 야권 반응처럼 서로 겉돌거나 충돌할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내정자는 이명박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통령과 기본적인 생각은 같다"면서 "대통령을 잘 보필해 강한 경제의 나라, 통합된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총리실 간 권한과 책임 구분이 분명치 않으면 분란을 피하기 어렵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총리의 불화 사례가 잘 말해준다.
모처럼 시도되는 화합과 통합, 중도실용의 내각 실험이 실패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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