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모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A(46)씨는 지난달 말 아들의 2학기 방과후학교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할 말을 잃었다. 아들이 들고 온 프로그램부터 지난 학기와 대폭 달라졌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농구, 축구 등 취미활동 과목은 모두 사라지고 국ㆍ영ㆍ수, 기술, 가정 등 학교수업의 연장선인 보충수업이 프로그램의 전부였다.
아들이 지난 학기 농구 과목을 들었는데 이번 학기에는 특별히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한 A씨는 신청을 포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튿날 아들은 다시 신청서를 갖고 왔다. 담임 선생님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며 부모 동의를 받아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A씨는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방과후학교는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지만, 담임 선생님은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는 게 학교 방침이라 참여하지 않으면 그 시간에 도서관에서 자율학습을 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씨는 교육청 장학사에게도 항의했지만, 장학사는 오히려 "다음달 일제고사가 치러지면 성적이 공개되기 때문에, 학교에서 당연히 공부시키는 것을 알지 않냐"며 "되도록 참여해 달라"고 오히려 A씨를 설득했다. A씨가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하면 지도를 하겠냐고 묻자 장학사는 "권고는 하겠지만…"이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학생들의 자율적인 선택인 '방과후학교'에 전원 참여를 강요하는 학교가 늘고 있어 학부모와의 마찰도 커지고 있다. 특히 시ㆍ도 교육청 성적 순위가 공개되는 일제고사(학업성취도평가)가 다음달로 다가오자, 일부 지역에선 교육청마저도 성적 향상을 위해 편법 운용을 방치하거나 부추기는 상황이다.
학생들의 다양한 적성을 살리자는 취지로 마련된 방과후학교가 교육당국의 '학교간 성적 줄세우기 정책'으로 사실상 강제 보충수업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 부천의 한 중학교에서는 2학기 개학 후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학교측이 방과후학교 전원 참여 방침을 세워, 담임교사들이 이를 거부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일일이 설득하는 작업에 나섰다. 학교 교감까지 나서 집에 가겠다는 학생들을 교문에서 붙잡아 한 명씩 다그치기도 했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쏟아졌지만, 학교 방침이 강경해 우리도 곤혹스럽다"고 했다. 그는 "개학 전 교감이 교무회의에서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부족하니 방과후학교에 모든 학생이 참여하도록 유도해달라'며 학생 참여율에 따라 담임교사 평가를 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전교조 부산지부에 따르면, 부산 남부교육청 관내 4개 학교도 6교시 정규 수업이 끝난 뒤에 했던 종례를 방과후학교가 끝난 뒤 하는 방법으로 전교생을 대상으로 보충수업을 실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교조 관계자는 "2학기 들어 전국 학교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인데, 일제고사 성적이 낮았던 시ㆍ도 교육청을 중심으로 편법 운영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무엇보다 학교별 일제고사 성적이 교감 등의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치는 데다, 내년부터는 교원 성과급제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기지역의 한 교사는 "특히 시ㆍ도 교육청별 일제고사 성적 순위가 매겨짐에 따라 관할 교육청 장학사들도 '성적 부담'을 안고 있다"며 "일부 지역에서는 장학사들이 나서서 방과후학교 참여가 저조한 학교에 전화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교조 엄민용 대변인은 "교육부가 내년부터 학교별 성과급제를 실시하겠다고 2일 발표했는데, 만약 성적으로 학교별 평가를 한다면 방과후학교 편법 운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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