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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7인의 사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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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7인의 사무라이

입력
2009.09.0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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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에이사쿠 전 일본 총리는 1964년 11월부터 7년 8개월 동안 재임한 역대 최장수 총리로서 일본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이끈 인물로 유명하다. 그의 퇴임을 앞두고 후쿠다 다케오와 치열한 후계 다툼을 벌인 다나카 가쿠에이는 사토의 마음이 후쿠다에게 기울었음을 알아채자, 81명의 의원을 이끌고 사토파를 이탈, 다나카파의 독립을 선언했다. 72년 5월의 이'반란'으로 7명의 소장파 의원들의 이름이 높아졌다. 오자와 이치로, 오부치 게이조, 하시모토 류타로, 가지야마 세이로쿠, 하타 쓰토무, 와타나베 고조, 오쿠다 게이와 등이다.

■다나카 시대를 활짝 연 이들은 13년 뒤 또 한 번의 '반란'을 감행했다. 좀처럼 막후의 정치적 실권을 놓지 않는 다나카에게 등을 돌리고 다케시타 노보루를 축으로 다케시타파를 결성했다. 이때부터 이들에게는 '다케시타파 7부교(奉行)'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부교'가 무인정권인 바쿠후(幕府)의 행정장관이니 '다케시타 7신'이라는 뜻이다. 할리우드가 율 브리너와 스티브 매퀸 주연의 서부영화 <황야의 7인(the magnificent seven)> 으로 리메이크할 정도로 유명했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7인의 사무라이>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소장파의 때를 벗고 자민당 실력자로 성장한 이들이 언제까지나 한 묶음일 수는 없었다. 파벌 수장인 다케시타와 친한 다케시타계와 2인자인 가네마루 신을 따르는 가네마루계로 갈라진 이들은 정책과 파벌 직책 등을 놓고 갈등했다. 특히 92년 8월 택배회사인 사가와규빈의 불법 정치헌금 사건으로 파벌 회장에서 물러난 가네마루의 후임 자리를 놓고 빚어진 정면 대결을 계기로 영원히 갈라섰다. 오부치에게 진 오자와는 하타, 와타나베, 오쿠다와 함께 파벌을 탈퇴해 독자 파벌을 만들었고, 아예 자민당을 나와 신생당을 띄웠다.

■자민당에 남은 3명 가운데 하시모토와 오부치 두 사람은 총리가 됐지만 오부치, 가지야마, 하시모토 순으로 잇따라 세상을 떴다. 탈당한 4명 가운데 오쿠다는 고인이 됐지만 3명은 나란히 민주당 최다선인 14선 의원으로 건재하다. 오자와를 중심으로 뭉쳐 민주당 최대 파벌을 이루었고, 8ㆍ30 총선으로 세력이 자민당 전체만큼 커졌다. 다만 자민당 시절부터 코앞에서 총리 자리를 놓쳐온 오자와 대표대행의 불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5월에 민주당 대표에서 물러나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에게 총리 직을 넘긴 셈이다. 하늘의 뜻은 참 묘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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