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로 내정한 것도, 또 그가 그런 제안을 수락한 것도 모두 의외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학자로서 정 총리 후보자의 경제관은 이른바 'MB노믹스'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재벌, 금융, 조세정책 등 핵심 경제정책에 대한 인식이 현 정부와 일치하거나 비슷한 부분을 전혀 찾기 어렵다"(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물론, 그가 경제팀 수장이 아닌 내각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라 해도, 정 총리 후보자의 경제철학과 이 대통령의 경제철학 사이에는 화해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정 총리 후보자는 '조순 학파'의 계보를 잇는, '케인지안'쪽 인물이다. 시장이 모든 것을 자동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는 만큼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 최근 정 총리 후보자가 "정부는 규칙만 정하고 안 지키면 벌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등 일부분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지만, 기본 철학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다. 결국 'MB노믹스'가 근간을 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신자유주의(국가가 시장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의)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셈이다.
정 총리 후보자의 애제자 중 한 명인 김상조 교수의 지적처럼, 당면 현안을 두고도 현 정부와는 견해를 180도 달리한다. 그냥 견해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지금껏 아주 신랄한 비판을 퍼부어 왔다. 가장 현격한 입장 차를 보이는 것이 현 정부의 재벌 및 대기업 규제 완화.
그는 작년 3월 한 신문 칼럼에서 "금산분리 완화, 지주사 규제 완화,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 등 극히 소수 대기업만 관심을 갖는 사안에 대해 지나치게 적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이런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초래할 시장질서 왜곡이나 경제력 집중 문제 등을 고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다"고 힐난했다.
정 총리 후보자는 또 현 정부 초기 고환율 정책에 대해 "대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고, 감세 정책에 대해서도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대 견해를 분명히 했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경기 부양을 위한 토목공사"라고 폄하했다.
물론 접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정부가 최근 친(親)서민ㆍ중도 실용 노선을 강화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정 총리 후보자가 그동안 특정 계층, 그러니까 부유층만을 위한 경제정책에 반대해 왔다는 점에서 최근 현 정부의 노선 변화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더구나 어차피 내각 수장인 만큼, 정 총리 후보자가 세세한 경제정책 하나하나에 의견을 개진하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 출신인 이상, 그가 경제의 큰 골격, 주요 현안에 대해 그냥 넘어갈 리는 없다. 이 점에서 현 경제팀과의 조화여부도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반(反)관료적 성향이 강한 그가, 정통재무관료들로 짜여진 현 경제팀과 매끄러운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불분명해 보인다.
결국 이런 불편한 동거 자체가 정 총리 후보자에겐 딜레마일 가능성이 높다. 소신을 드러내자면 정면 충돌이 불가피하고, 그렇다고 색깔을 감추자면 '얼굴 마담'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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