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실화를 스크린으로 '이태원 살인사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실화를 스크린으로 '이태원 살인사건'

입력
2009.09.03 00:45
0 0

적어도 30대 이상이라면 이 이야기의 시작과 결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외국인 천국, 미군의 놀이터로 불려지는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가게 화장실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된 한 한국 젊은이의 죽음은 12년 전 이 땅을 들쑤셔 놓았다. 검찰 수사를 거쳐 법정에 선 용의자들은 재미교포와 한국계 미국인.

재미로 살인했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여론은 들끓었다. 그러나 끝내 법은 그 누구에게도 살인에 대한 단죄를 하지 못했다. 살인이 있었고 유력한 용의자는 있었으나 살인자는 없게 된 기기묘묘한 이 사건은 오래도록 사회의 공분을 샀다.

실제 사건을 거의 고스란히 옮겨 놓은 '이태원 살인사건'은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라는, 영화로서는 지독히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출발한다. 반미감정을 살짝 건드리며 자칫하면 얄팍한 애국적 상업주의로 비칠 수 있는 점도 이 영화가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사실을 근거로 한 픽션임을 밝히는 이 영화는 스스로를 '미스터리 현장살인극'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로 홍보하고 있지만 강렬한 영화적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호객 행위를 거부하는 듯한 '이태원 살인사건'은 진솔하고 우직한 연출로 관객의 마음을 두드릴 듯하다. 무심코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엔딩 크레딧이 오를 무렵 예기치 못했던 펀치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 들 것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태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수사를 묘사하는 과정은 마치 옛날 신문을 읽거나 옛날 TV뉴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줄 뿐이다. 긴장감으로 스크린을 대할 수 없는 이유다.

영화의 저력은 후반부에서 발휘된다. 살인사건의 진범이 과연 누구일까를 묻는 재판 과정은 둘 다 살인에 관여했을지 모른다는 가정 등을 던지며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인다.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눈가에 광기가 슬쩍 어린 피어슨(장근석)의 모습도 서스펜스의 밀도를 높인다.

사건 담당 검사 박대식(정진영)의 지나친 정의감이 역설적으로 범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음을 시사하는 장면은 인생의 아이러니를 곱씹게 만든다.

자칫 만용으로도 비춰질 수 있을 만큼 용기와 뚝심이 빛나는 이 영화는 홍기선 감독이 메가폰을 쥐었다. 홍 감독은 젊은 시절 '꽃잎' '거짓말' 등의 장선우 감독,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박광수 감독 등과 영화적 교우를 나눴고, 1992년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로 장편영화 데뷔를 했다. 2003년엔 최장기 장기수 김선명의 삶을 다룬 '선택'을 연출했다.

정진영은 지난달 31일 이 영화의 기자시사회에서 "한국형 '막걸리 스릴러'로 봐달라"고 말했다. 텁텁한 듯 진국의 맛을 선사하는 이 영화는 과연 한숨에 들이켜고 싶은 막걸리다. 1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