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강원 홍천군 오안초등학교 강당. 아이들과 교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큰 도화지에 색종이로 '환영합니다''사랑합니다'라는 글귀를 만들어 붙이느라 바빴다.
한 학생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누군가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장면을 되풀이 연습했다. 손님맞이 준비가 끝나자 전교생이 강당에 모였다. 잠시 후 강당 뒤쪽 문에서 한 여성이 "Hello"를 외치며 나타났다.
"Nice to meet you. My name is Hannah Kim, English teacher."(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영어 선생님 김한나입니다.)
전교생 63명의 시골 학교를 찾은 귀한 손님은 'TaLK(Teach and Learn in Korea)'프로그램을 통해 방과 후 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한 재미교포 김한나(20)씨. 학교측은 교문에 '김한나 선생님 환영'이란 현수막까지 내걸고 극진히 맞았다.
지난해 첫 실시된 TaLK 프로그램을 통해 '살아있는 말하기 영어'를 접한 아이들이 새 선생님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알기 때문이다.
전임 교사인 재미교포 레이 리씨는 아이들에게 '영어도 놀이처럼 즐겁게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줬다. 3학년 김채은(9)양은 "레이 선생님과 1년 동안 영어로 말하며 놀다 보니 이젠 TV에서 나오는 영어가 무슨 뜻인지 알 정도로 영어가 늘었고 재미있어졌다"고 말했다.
레이 리씨는 학교 수업과 별도로 이 지역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위한 영어교실을 운영했고, 지난달 학교를 떠나며 매년 30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김씨 역시 'teach and learn'이란 말 그대로 영어 가르치기와 더불어 모국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이 프로그램에 거는 기대가 크다. 샌프란시스코시립대(City college of SF)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한국어를 능숙하게 한다. 한국 문화와 예절을 소중히 여겨 집에서는 무조건 한국어를 쓰게 했던 부모 덕분이다.
그는 "그래서인지 조국에 대해 궁금한 게 참 많았다"고 했다. 수업 없는 날엔 고궁 나들이며 설악산 등반, 동해안 일주 등 전국 곳곳을 누비며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갈 참이다. "한국이 어떻게 생겼고 사람들은 어떤지, 또 한국에서 먹는 김치 맛은 어떤지, 한국에 대해 모든 걸 다 알고 싶어요."
가르침에 대한 열의도 뜨겁다. 첫 출근에 앞서 지난 주말 홍천에 도착하자마자 학교를 찾아 교사들과 수업 방식을 상의했고, 손수 교재도 만들었다. 그는 "영어도 한국어처럼 습관적으로 접해야 빨리 익힐 수 있다"며 "놀이를 활용해 아이들이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 그는 이날 오후 3학년 대상 첫 수업에서 흥미를 끌어내는데 초점을 맞췄다.
영어수업은 보통 원어민 교사와 각 학년 담임 또는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함께 진행한다. 원어민 교사가 영어로 말하면 담임교사가 이를 잘 못 알아듣는 학생에게 설명하는 방식이다.
영어수업은 2학년부터 학년별로 월~금요일 매일 1시간씩 이뤄진다. 김씨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영어와 친숙해질 수 있도록 노래 부르기, 자연 속 야외 수업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볼 계획이다.
학교도 영어교육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교실 곳곳에 영어 낱말을 붙여 아이들이 영어를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했다. 또 여름방학 동안 전 교실을 리모델링 하면서 영어만 사용해야 하는 공간인 '잉글리시 존'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책도 읽고 간식도 먹으며 자연스레 영어로 대화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오안초교 아이들은 학교 외에는 마땅히 공부할 곳이 없다. 여느 학교 앞에서 볼 수 있는 문구점도 버스를 한참 가야 할 정도로 외진 곳이라 학원 수강은 꿈도 꿀 수 없다. 살아있는 영어, 말하는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원어민 교사의 존재가 그만큼 고마울 수밖에 없다.
이호청 교장은 "부모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마을 특성상 학교 말고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면서 "어릴 적 학습이 중요시 되는 영어를 TaLK 프로그램을 통해 배울 수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동수 국립국제교육원 홍보팀장은 "TaLK 프로그램은 농어촌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인 TaLK 장학생들도 한국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일종의 민간외교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TaLK(Teach and Learn in Korea) 프로그램
도시와 농촌 간 영어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교포 2세나 원어민 대학생을 장학생으로 초청, 방과 후 학교 영어강사로 활용하는 프로그램. 이들은 주 15시간 수업을 하고 소정의 장학금과 함께 한국문화 체험 및 한국어 학습 기회를 제공받는다. 지난해 9월 처음으로 386명을 선발했으며, 올해 뽑힌 546명은 3주간 연수를 거쳐 1일 전국의 농어촌 지역 학교에 배치됐다.
홍천=박관규 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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