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4시 서울광장.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 관계자들은 유족들과 함께 덕수궁 대한문에서부터 '삼보일배'(三步一拜) 행진을 했다. 용산 참사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행진이었으나 참가자들은 특별한 구호를 외치지도, 차도를 점거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인도를 따라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앞을 지나갈 무렵 경찰이 방패로 막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 16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범대위는 이튿날 같은 장소에서 삼보일배 행진을 다시 시도했으나 이번엔 서울시의회 부근에서 가로막혔고 8명이 연행됐다.
대법원이 최근 삼보일배를 불법 시위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지만, 경찰이 삼보일배참가자를 잇따라 연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검경은 "대법원 판결이 모든 삼보일배를 정당화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인 반면, 진보적 시민단체들은 "대법원은 평화적 삼보일배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반발했다.
지난 7월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2005년 전국플랜트건설노조가 집회 이후 삼보일배 행진을 하다 교통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원은 "삼보일배 행진은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폭력성을 내포한 행위로 볼 수 없어 시위방법의 하나로 표현의 자유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며 "집회 시위가 신고 내용과 다소 달라진 면이 있다 해도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다소의 피해를 발생시킨 경우'에 불과하고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기 때문에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밝혔다.
검경과 진보 단체들은 이 판결을 달리 해석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플랜트건설노조는 집회 신고를 했지만, 용산 범대위 측은 사전에 신고를 하지 않아 사안이 다르다"며 "미신고 집회나 야간옥외집회 등 불법 집회에서의 삼보일배는 당연히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플랜트건설노조 사건에 대한 대법원 무죄판결을 이끌어낸 최성호 변호사는 "대법원은 당시 삼보일배가 신고 범위를 벗어나 불법이라 볼 수 있지만 피해가 미미하고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신고 유무가 쟁점이 아니다"며 "설령 법을 어겼더라도 삼보일배가 주변에 지장을 주지 않는 평화적 행위로서 위법성조각 사유에 해당돼 법적 처벌을 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더 나아가 삼보일배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상 사전신고 의무 등을 적용받지 않는 '의식'이기 때문에 아예 신고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황희석 변호사는 "용산 삼보일배로 연행된 24명에 대해 변호인단이 체포적부심 심사를 신청하자 경찰이 전원을 24시간 만에 풀어준 것은 스스로 체포 자체의 적법성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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