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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50년-책, 미래와의 대화] <12> 공교육은 21세기에도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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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50년-책, 미래와의 대화] <12> 공교육은 21세기에도 유효한가

입력
2009.09.03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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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테일러 개토 '교실의 고백'

자유에 대한 심도깊은 통찰로 미국 독립혁명의 철학적 근거를 제시했던 토머스 페인(1737~1809)의 <상식> . 난해한 용어와 복잡한 논리는 대학원생 수준의 책으로 꼽힌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책은 200년 전에는 너나없이 읽었던 대중서였다.

미국의 인구가 250만명에 불과하고, 그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노예 혹은 반 노예 상태였던 18세기말 <상식> 은 미국에서 무려 60만부나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였다. 반면 12년 간 의무교육을 받는 현대 미국인 5명 중 1명은 약병에 쓰인 복용법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

교사 출신의 미국 교육운동가 존 테일러 개토(74)가 1990~2000년에 쓴 에세이와 강연록을 모은 <교실의 고백> (2002·원제 'A different kind of teacher')은 꽉 짜인 커리큘럼, 훈련된 교사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근대 공교육이 왜 기초적 읽기, 쓰기, 셈하기조차도 서투르고 비판적 사고를 할 줄 모르는 성인을 양산하는가를 뼈아프게 질문한다.

1992년까지 뉴욕에서 30년 동안 교사생활을 했던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가 주도하고 강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 공교육'의 폐해를 낱낱이 파헤치고 그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미래 교육모델의 방향을 암시한다. 개토의 지적은 미국식 공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이식한 한국의 교육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공교육은 아이들을 어떻게 망치는가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서로에게 잔인합니다. 친구의 불행을 슬퍼할 줄 모르고, 약한 자를 비웃으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친구에게 너무나 쉽게 경멸감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쉽게 친해지지 못하며, 혼자 있는 걸 참지 못하며,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뉴욕시 올해의 교사상'을 3차례, '뉴욕주 올해의 교사상'을 1차례 수상한 '우수 교사'였던 개토가 고백하는 미국 공교육의 현실은 참담하다. 학교가 학생들의 '배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틀에 맞는 배움이 존재한다는 것이 비극의 원천이다. 파편화된 수업은 배움을 배움답지 못하게 하는 근인이다. 과목으로, 단원으로, 또 소단원으로 파편화된 수업은 교사가 개입할 여지를 차단하고, 학생들이 주체적인 사고를 하게 할 가능성을 봉쇄한다.

50분 단위로 쪼개져 종소리가 울리면 전혀 맥락이 다른 내용의 수업을 들어야 하는 시스템은 그로 하여금 "학교에서 이뤄지는 지적 활동의 본질은 매우 천박하다. 학교가 가장 잘 가르치는 것은 우둔함"이라는 독설도 서슴지 않게 만든다.

저자의 비판은 "나쁜 학교에 왜 이토록 많은 돈이 들어가는가?"라는 회의로 이어진다. 그는 현재의 공교육 체제는 결코 학생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학교는 오랜 경험이 일러주는 배움의 방식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을 고용해서 돈을 쓰기 위해 세워진 곳"이라는 것.

그는 뉴욕주 공립학교에 할당되는 돈을 1달러라고 하면, 51%가 시스템 전체의 행정비용으로 잘려나가고, 지역 학구가 또 5%를 떼가며, 학교에 대한 행정·감독 비용으로 12%가 나가 결국 학교에서 쓸 수 있는 돈은 25센트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교육비는 결국 수백만명에 이르는 관료 등 '교육 마피아'에게 바치는 상납금일 뿐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정작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개토는 일갈한다.

● 학교를 통한 '대중' 만들기

공교육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아울러 저자는 이런 '강제적인 학교교육' 제도가 도입된 역사적·철학적 맥락을 공들여 설명한다. 프랑스 정치가 토크빌이 갈파한 대로 정부 주도의 의무교육이 부재하던 19세기초까지 미국인들의 교육수준은 상당했지만 미국의 교육전문가들이 프러시아의 영향을 받으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지도층이 될 소수정예에게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철학적 배경을 깔고 있는 프러시아식 의무교육제도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순응하는 '대중'의 양성을 희망했던 자본가들의 후원 아래 20세기초부터 미국 교육 시스템의 근간이 됐다.

개토는 되묻는다. "학교가 비판할 줄 아는 사고를 가르칠 경우 일어날 경제적 비극을 생각해 보십시오. 진실로 중요한 것은 돈 주고 살 수 없다는 철학자의 사상을 가르치는 것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대량생산경제 탓에 쓸모를 잃은 채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물건을 갖고 싶어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학교가 제공하는 훈련 없이 대량경제체제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학교 개혁을 일으키려면 우리는 이 기묘한 공생관계를 더 잘 이해해야 합니다."

● 교육 시스템의 미래

"제한적인 학교교육이 쇠락할 운명입니다. 그걸 손봐서 더 잘 돌아가게 할 방법은 없습니다"라는 개토의 말은 무의미한 짜깁기식 커리큘럼, 비대한 경영, 표준화된 시험 등으로 상징되는 20세기형 공교육 시스템, 학교교육이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을 더 자주 교실 바깥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미래교육의 핵심이다. 학생, 교사, 학부모가 스스로 하는 학습에 동의하고 교사와 부모가 그 과정을 감독하는 '자기주도학습', 노인시설 병원 동물보호소 공원 같은 곳에서 행하는 '사회봉사', 자녀가 부모의 일터를 찾아가서 배울 수 있는 '현장 커리큘럼'의 채택 등이 구체적 실천방안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90년대초부터 학부모, 지역사회가 정부와 협약을 맺고 교육청의 간섭 없이 교과과정, 예산집행을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차터 스쿨', 컴퓨터 수학 예술 커뮤니케이션 과학 등 특정 분야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발굴·육성하는 전문학교인 '마그넷 스쿨'이 활성화하고 있다.

박물관 도서관 법원 등을 교육장으로 연결해 그곳에서 관련 수업을 정기적으로 듣고 체험하는 교육과정인 '시티 애즈 스쿨'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종태 전 한국청소년정책개발원장은 "개토의 주장은 '근대 학교체제'가 가지고 있는 경직성을 제대로 비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비판 속에서 대안을 찾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제도화·규격화한 교육 시스템에서 벗어난 모델을 상상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학교를 넘어서> 의 저자이자 교육운동가인 이한씨는 "학교의 구체적인 구성요소와 학교교육의 경험을 분석하고 검토하면 할수록, 학교는 학교제도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서 적실한 배움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것이 개토의 진단"이라며 "교육 분야에 대한 '인본주의'의 적용이 개토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 사토 마나부 日 도쿄대 교수 인터뷰

압축적 근대화를 위해 경쟁 원리를 기반으로 구축된 일본,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교육시스템을 비판해온 사토 마나부(58) 일본 도쿄대 교수. 그는 압축적 근대화의 종말과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이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왔고, 이는 독서량과 방과 후 학습시간 저하 등 학생들의 지적 관심의 쇠퇴로 이어졌다고 진단한다.

<교육 개혁을 디자인한다> (2000),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2001) 등의 저서에서 그는 이 위기를 '배움으로부터의 도주'로 명명하고, 그 근본 해결책을 '공부'에서 '배움'으로의 전환이라고 제시한다.

아무런 대화 없이 수행되는 것이 '공부'라면, 사물이나 사람과 만나 대화하는 행위, 자기 자신을 만나서 대화하며 깨우쳐가는 과정이 '배움'이라는 것. 이런 맥락에서 '함께하는 삶을 재건한다' '개인의 선택을 중시한다' 등 인본주의적 교육목표를 제시한 존 테일러 개토의 문제해결 방식과도 맥락이 통한다.

그러나 학교(공교육)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품은 개토와 달리, 그는 대안교육은 학교시스템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학교는 '배움의 공동체'가 되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 '배움'의 강조는 동아시아 교육모델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는가, 서구를 포함한 보편적 근대교육의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는가?

"동아시아는 물론 서구에서도 현재의 학교는 20세기 산업주의 시대 대규모 공장의 대량생산 조립라인을 모델로 하고 있다. 21세기는 포스트산업주의 사회이며 '배움의 공동체'는 21세기 학교의 보편적 비전이다."

- 공교육 개혁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홈스쿨링의 내실화로는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고 배울 권리를 실현하는 학교를 창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공교육 개혁에 의해서만 평등한 교육과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 아이들을 평가하지 말자는 주장도 하는데, 너무 앞서나가는 것 아닌가?

"평가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테스트에 의한 경쟁적∙서열적 평가를 부정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배움을 이해하고 촉진하는 새로운 탐구방법을 탐구하고 있다."

- '배움' 교육의 필수적인 요건은 무엇인가?

"비전의 공유다. 학교개혁의 비전과 수업개혁의 비전을 교사와 학부모가 공유하지 않는 한 어떤 학교 개혁의 노력도 헛수고로 끝날 것이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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