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에는 미혼 여성들이 많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우리집에 둘, 시댁에 둘이다. 얼마 전 여자들끼리만 은밀한 모임을 가졌다. 최연장자와 최연소자의 나이 차는 스물두 살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된다. 주로 남자들이 있을 때 하지 못하는, 몸과 마음이 아팠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미혼인 한 선배가 얼마 전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의사가 그녀에게 폐경 소식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 건 후회되지 않는데 아주 잠깐 아기는 낳아보지 못할 거란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다고 한다. 이럴 때면 꼭 분위기를 바꿔주는 이들이 있다. 후배가 희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얼마 전 체외 수정으로 육십의 나이에 아기를 출산한 한 여성의 이야기에 잠시나마 선배의 마음이 가벼워진 듯했다. 후배는 그 여성이 2년 만에 암으로 숨진 사실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암에 걸린 걸 알면서도 아기들을 가졌다. 이제 아기들만 세상에 남게 되었다. 내친 김에 후배는 다른 소식도 전했다. 이제는 아기의 성별뿐 아니라 눈동자 색깔까지도 맞춤으로 낳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엄마가 결정한 그런 조건들을 그 아기가 좋아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가끔 자식을 나 자신으로 혼동하니까.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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