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이다. 그 안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다 담아야 한다. 만드는 사람은 강한 심리적 압박을 느끼겠지만, 보는 사람은 강렬한 정서적 쾌감을 만끽할 만하다. 23~27일 서울 구로구 일대에서 열리는 제1회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는 3분 동안 과연 어떻게 무슨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낼 것인가라는 의문과 호기심이 교차하는 행사가 될듯하다.
이 영상제에 3분짜리 초단편 신작을 내놓는 충무로 감독 5명의 감정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생애 가장 짧은 도전에 나선 그들은 기대와 호기심과 부담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3분 동안 못할 게 뭐 있나
주어진 돈은 300만원이고, 배정된 시간은 3분이라지만 다섯 감독들의 영화적 욕심은 무한대다. '고양이를 부탁해'와 '태풍태양'의 정재은 감독은 '미래생활1'이라는 제목의 SF영화를 찍으려 한다.
미래의 두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촌철살인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정 감독은 "흔히 블록버스터 영화를 떠올리는 SF 장르도 짧은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검은 집'과 '7급 공무원'의 신태라 감독의 '17일 후'는 2010년 제2차 한국전쟁이 발발한다는 가상적 내용을 담는다. 숲 속에 낙오한 국군 한 명과 북한군 한 명의 아이러니한 대치 상황을 그린다.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디지털카메라가 등장인물과 스크린을 연결한다. 신 감독은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장비로 촬영해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중간첩'을 만들었던 김현정 감독은 뚱보 아줌마와 소매치기의 사연을 담는다. 지갑을 훔쳐 달아나는 소매치기를 잡은 아줌마에게 놀라운 반전이 기다린다.
'버스정류장'의 이미연 감독은 대사를 사용치 않고 따스한 정서를 전달하려 한다. 이 감독은 "도시 생활에 지친 소시민들이 마음의 둥지를 가지게 되는 모습을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제목은 미정.
'경축! 우리사랑'의 오점균 감독의 '따뜻한 제안'은 기발한 발상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한 노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시간의 압박
충무로에서 활약해 온 감독들에게 3분은 견디기 힘든 압박이다. 이미연 감독은 "짧은 시간, 이야기가 없이 의도한 바가 제대로 전달될까 걱정"이라며 "일본 하이쿠와 마종기 시인의 시집을 탐독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태라 감독도 "짧은 시간에 유머와 아이러니를 다 제공하려니 쉽지 않다"고 했다. 신 감독은 "기성 감독으로서 잘 찍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 영화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임한다"고 덧붙였다.
오점균 감독도 부담감을 가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짧아서 부담 없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니 장편과 다를 게 없다"고 했다. 오 감독은 "3분이라는 압박이 오히려 건강한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며 "시 백일장에 나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정재은 감독은 아예 "운과 우연에 맡길 생각"이다. "3분이라는 길이에 감독의 특출한 능력이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김현정 감독은 "평소 드라마는 소설이고, 영화는 시라고 생각해왔다"며 "이번 작업을 하며 드라마는 대하소설, 영화는 장편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적지않은 부담감 속에서도 다섯 감독은 3분 동안 강렬한 소통을 이루길 원했다. 신태라 감독은 "짧고 굵게 만들면 더욱 임팩트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재은 감독은 "대부분의 영화제들이 길고 완성도 높은 영화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짧은 영화도 소통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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