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 계획이 수렁에 빠졌다(한국일보 2일자 1면 보도). 두 차례 헌법소원 심판을 거친 합의는 간 데 없고, 정치적 이해 타산과 정부의 소극적 자세만 뚜렷하다. 2007년 시작된 건설 공사에는 이미 총예산의 24%인 5조 3,600억원이 투입됐다. 그런데도 계획의 핵심인 이전 대상 부처 확정 및 자족 기능 보완책 등 정부 후속조치는 감감무소식이고,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자연히 사회적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고, 이전 대상 후보 부처의 반발이 표면화하고 있다. 한 쪽에서는 그 동안 쏟아 부은 거액의 혈세가 아깝다, 반대쪽에서는 앞으로 퍼부어야 할 혈세가 더 아깝다고 팽팽하게 맞서 있다.
여야가 '세종시 특별법(안)' 처리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상황 변화로 정치적 계산이 더욱 복잡해진 결과다. 충북 청원군이 2개 면의 편입예정에 뒤늦게 반발하고, 민주당과 충북도가 이를 떠받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열린우리당 시절 충청권에 진 정치적 부채를 생각하면 특별법 자체에는 도저히 반대할 수 없는 처지지만, 지지기반이 탄탄한 청원군을 단일 선거구로 유지하기 위해 부분적 반대를 선택했다.
한편으로 충청권 지지기반을 넓히고, 자유선진당과의 원내 협력 접점을 찾으려고 한동안 적극적이었던 한나라당도 심대평 자유선진당 전 대표의 탈당을 전후한 물밑 정치협상이 깨지면서 원래의 심드렁한 자세로 되돌아갔다. 열린우리당 정권에 대한 반감과 관료사회의 반발을 무릅써야 할 이유가 많이 흐려졌다.
정치권의 이해 충돌이 조정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그나마 기댈 곳은 정부 뿐이다. 어쨌든 백지화가 불가능하다면 원래 계획을 강행하는 수밖에 없고, 그 추진력은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지도력과 결단에서나 나올 수 있다. 비슷한 규모의 예산이 드는 '4대강 살리기'와 마찬가지로 경기 회복을 위한 사회적 투자이자 시범적 녹색도시 건설이라는 의미를 부각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정책의 연속성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이 대통령이 하루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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