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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수험생과 학부모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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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수험생과 학부모들께

입력
2009.09.03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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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대학 입시철입니다.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되었으니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대학과 전공 선택을 놓고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상위권 대학의 비인기 학과를 선택해야 할지, 대학 명성은 조금 못 미치나 잘나가는 학과로 가야 할지 고민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고민의 상당부분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잘못된 인식과 사회 분위기에 기인합니다.

대학을 선택하거나 전공을 정할 때 대부분 이 대학을 나오면, 이 전공을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우선시합니다. 그러니 비록 비인기 전공이라도 대학 이름을 보고 지원할 것인지, 아니면 대학을 조금 낮추되 대신 잘나가는 전공을 택할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요. 자연히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위권 대학이나 잘나가는 전공이 아니면 무언가 부족한 것처럼 됐습니다. 이게 다 대학 이름을 따지고 물질적 풍요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은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를 위해서나 자라나는 세대 개개인을 위해서나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아주 좁은 잣대를 세워놓고 그것에 못 미치는 대다수 사람의 마음에 못을 박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빨리 고쳐야 합니다. 해결 방안은 간단합니다. 남들보다 잘 먹고 잘살겠다는 욕심을 전공선택의 기준으로 삼지 않으면 됩니다.

요즘 잘나가는 법학 의학 경영학은 사회에 꼭 필요한 학문입니다. 그렇기에 사회정의나 인간의 생명,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사명감을 갖고 지원해야 합니다. 분명 그런 사명감을 갖고 이들 전공을 택하는 학생도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자신의 희망과 적성과는 상관없이 사회 통념 때문에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다 개성과 적성이 다른데 그걸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법대나 의대에 가라고 강요하니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옛날이 그립습니다. 제 대학시절의 은사 세 분은 1960년대 초반 학번으로 당시의 명문고인 서울고, 경북고, 광주고를 나와 서울대에 진학했습니다. 고등학교 성적이 전교 10등 안에 드는 최상위권에 속했음에도 주저없이 독문과를 선택하였습니다. 독일문학이 좋아서, 독일문화와 사상에 매료되어 법대를 마다하고 독문과를 택했다 합니다.

요즘 이러한 소신지원을 찾기란 참 힘듭니다. 그 정도 성적이면 법대나 경영대, 의대로 가는 것이 당연한 공식처럼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인문학이나 기초과학이 홀대 받는 것도 당연합니다. 인문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은 주위로부터 인문학을 해서 도대체 밥은 제대로 먹고 살겠는가 하는 걱정의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인문학을 전공해서 밥 못 먹고 사는 학생은 보지 못했습니다. 다들 여러 분야에 취직해서 나름대로 잘들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자신의 적성이 인문학에 맞는다면 소신대로 인문학을 선택하십시오. 대학 이름을 따지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고 자기에게 맞는 전공을 선택하십시오.

수능시험에서 수석을 한 학생이 대학에 가서 철학이나 물리학을 공부하겠노라 당당히 소신을 밝히던 옛날 전통을 되살려야 합니다. 21세기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전공과 무엇보다도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는 창의력을 길러주는 인문학적 소양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전공을 떳떳이 선택하고 그걸 자랑스러워하도록 사회분위기를 바꿔야 할 때입니다.

김용민 연세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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