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은 탈레반 무장세력을 "10달러 탈레반"이라고 부른다. 아프간인들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단돈 10달러에 팔려 용병이 된다는 뜻이다. '이슬람 원리주의'라는 신념으로 무장한 시리아나 체첸의 반정부 게릴라와는 동기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전쟁 양상도 다르게 전개된다.
아프간 서부 헬만드에 파병된 로버트 워렌(26) 병장은 "아프간 무장세력들은 천국에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내일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라크전에서 흔히 보았던 자살폭탄 테러 같은 '순교'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이 미군과 직접 맞서는 대신 도로에 지뢰를 매설하고 동굴에 은신하는 등의 '보이지 않는 전투'를 하는 이유이다. 그는 "탈레반들은 '오늘 안되면 내일 하면 된다'는 느긋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01년 9ㆍ11 테러 직후 시작된 아프간 전쟁이 9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전보다 수월하게 끝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철군준비가 한창인 이라크 주둔 미군이 아프간으로 집결하고 있으나 미군을 포함한 다국적군의 희생자는 올해 들어 거의 매달 최고치를 기록할 만큼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아프간 전쟁을 베트남 전쟁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베트남전을 수행한 린든 존슨 대통령에 비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6월 아프간 주둔 사령관을 스탠리 맥크리스털 장군으로 교체하면서 대대적인 전략 변화를 꾀했다. 무장세력을 사살하는 것에서 아프간 민간인을 전쟁 피해로부터 보호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라크전에서 효과를 봤던 '여론전'이다. 아프간 보안군과 경찰에 대한 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마약거래 등을 막는데도 상당한 자원을 투입했다. 아프간 국민이 무장세력으로 전락하는 환경을 근원부터 막아보자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실패로 판명되고 있다. 더욱이 지난달 20일 실시된 아프간 대선이 부정투표 논란 등 극도의 혼란 속에 치러지면서 아프간 정황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수렁으로 치닫고 있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국방부가 "수주 내" 아프간 병력 증강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브스 대변인은 또 "아프간 전쟁이 수년 동안 자원과 자금, 인력이 부족했고 무시됐으며 이는 하룻밤 새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조지 W 부시 전 정권에 책임을 돌렸다.
맥크리스털 사령관이 몇 주 내 제출할 아프간 전략검토 보고서는 "아프간은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의 아프간 전략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 될 것으로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맥크리스털 사령관은 연말께 또 다른 보고서를 통해 2만명 정도의 추가 병력 증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아프간전에 관한 미국 내 정치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아프간전을 '가치없는 것'으로 보는 여론이 과반수를 넘어서고 있고, 행정부 내에서도 '더 이상의 추가파병은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의회 휴회기에 이라크와 아프간을 방문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맥크리스털 사령관은 병력 요청규모를 축소하라는 극심한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폭로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6년 이라크정세가 나빠지면서 그 해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완패했고, 이는 급속한 권력누수로 이어졌다. 이대로라면 그렇지 않아도 건강보험 개혁 문제 등으로 난관에 부닥쳐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중간선거에서 부시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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