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기댈 곳은 역시 가족뿐일까. 희생, 사랑, 혈육의 정 같은 전통적인 가족의 미덕을 강조하는 영화와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인 '해운대'와 관객 600만명을 넘어선 '국가대표'에는 가족 코드가 깔려 있다.'해운대'는 재난영화이지만 가족영화이기도 하다. 작은 아버지와 심한 갈등을 겪던 주인공, 이혼한 지질학자 등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가족 관계에 문제가 있지만, 쓰나미라는 대재앙을 겪으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국가대표'의 주인공인 해외 입양 청년은 친엄마를 찾기 위해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된다. 두 영화 모두 핏줄의 끈끈한 정을 이야기한다.
10일 개봉하는 '애자'를 비롯해 가을 스크린에 대기 중인'내 사랑 내 곁에' '하모니'도 가족의 전통적 이미지와 연관이 있다. '애자'의 주인공 모녀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애틋하다. '내 사랑 내 곁에'는 불치병에 걸린 남편과 아내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다.'하모니'는 교도소에서 아기를 낳아 키우는 수감자의 모정을 내세운다.
하지만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요즘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가족 코드에 비판적이다. 그는 "이런 영화들은 사회안전망이 미비한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 개인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가 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자 퇴행적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컨대'해운대'는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가족주의 색채가 짙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바람난 가족''가족의 탄생' '좋지 아니한가' '다섯은 너무 많아'등 지난 4, 5년간 나온 몇몇 한국영화들이 가족의 해체나 위기, 혈연관계가 아닌 대안가족 등을 소재로 전통적 가족주의에 이의를 제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안방극장에서도 가족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젊은 층의 일과 사랑을 다룬 트렌디 드라마나 '싱글맘'등 해체된 가족 위주의 드라마가 주를 이뤘다.
가족 드라마의 대표 주자는 KBS 주말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장성한 손자 등 삼대로 이어지는 이 드라마는 요즘 보기 드문 대가족을 통해 가족애를 그리며 시청률 40%대에 육박하고 있다.
시청률 47.1%의 최고 기록으로 종영한 SBS '찬란한 유산' 역시 가족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모자랄 것 없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흥청망청 안하무인으로 살던 남자가 할머니의 유산 문제를 계기로 가족 사랑에 눈을 뜬다. 부도가 나 숨진 것으로 알고 있었던 아버지, 계모의 계략으로 실종된 남동생을 다시 만나 오열하는 여주인공의 모습도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 두 드라마는 집안 어른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솔약국집 아들들'의 할아버지와 '찬란한 유산'의 할머니가 대표적이다.
시청자들은 왜 가족 드라마를 좋아할까.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개인주의가 날로 팽배하고 가족은 점점 더 해체되어가는 상황에서 드라마가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현실의 가족이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실에서 잃어버린 가족의 단란한 행복을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되찾고 싶은 욕망이 가족 드라마의 인기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오미환기자
김종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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