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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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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입력
2009.09.0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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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떨어져 살아도 좋을 일

마루에 앉아 신록에 막 비 듣는 것 보네

신록에 빗방울이 비치네

내 눈에 녹두 같은 비

살구꽃은 어느 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나는 오글오글 떼지어 놀다 돌아온

아이의 손톱을 깎네

모시조개가 모래를 뱉어 놓은 것 같은 손톱을 깎네

감물 들 듯 번져온 것을 보아도 좋을 일

햇솜 같았던 아이가 예처럼 손이 굵어지는 동안

마치 큰 징이 한번 그러나 오래 울렸다고나 할까

내가 만질 수 없었던 것들

앞으로도 내가 만질 수 없을 것들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이 사이

이 사이를 오로지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의 혀 끝에서

뭉긋이 느껴지는 슬프도록 이상한 이 맛을

● 이 시를 신록의 계절에 여러분들에게 보내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단풍의 계절에 이 시를 다시 읽어보니 나무에 새물이 들고 잎이 돋아나고 신록이 지다가 푸른 열매가 열리는 시간을 거쳐서 비로소 우리 이 자리에 와있는 것을 알겠다.

그 시절, 우리의 눈에는 '녹두같은 비'가 맺혔고 우리는 놀다가 돌아온 아이의 작은 손톱을 깎아주었고 그러다가 들었던 '큰 징' 소리. 세월이 한번 크게 울렸다가 아릿하게 무(無)로 잠적해가는 소리. 그때 들었던 소리에서 만질 수 없는 무엇을 들었다면 단풍의 계절에 우리 앞에 있는 것은,

'앞으로도 내가 만질 수 없는 것들'이다. 북으로부터 남으로 내려오는 붉은 단풍을 보면서 그 색과 빛에 어른거리는 만질 수 없는 슬픔이 마지막으로 뜨거워지는 순간을 겪으면서 이 시를 다시 읽는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그래, 살구꽃이 지던 그 자리에 아리디아린 살구가 돋아났지. 그리고 지금 단풍이 왔고.

허수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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