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CIA)가 테러 용의자에게 가한 잔혹행위에 대해 미 정부가 특별검사를 임명하기로 한 것을 계기로 최근 미국에서 과거사 청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그런데 그 바람을 일으킨 주역이 현 인도총리인 만모한 싱의 딸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권단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소속 암리트 싱(39)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싱 변호사는 특별검사 임명의 결정적 계기가 된 '미 법무부 감찰보고서' 공개를 요구하는 줄기찬 법정투쟁을 벌여왔다.
인도 미국 이중국적자로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싱이 조지 W 부시 정부의 반인권적 고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ACLU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은 2003년 봄이다. 인종차별 관련 사건을 주로 맡아왔던 그녀는 우연히 이라크 내 포로수용소 아부그라이브 수감자에 대한 학대의혹에 대한 보도를 접했다.
이를 계기로 미 정보기관이 더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학대를 자행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갖게 되고, 그 해 9월부터 정보자유법에 근거해 국가기관에 관련 문서 공개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싱은 뉴욕타임스(NYT)에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동료들은 '그 많은 자료를 넘겨 받으려면 선반을 좀 치워놓아야 할 것 같은데?'라고 놀리곤 했다"고 말했다.
첫 번째 성과는 2004년 뉴욕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 아부그라이브 포로학대 사진 공개 판결을 이끌어 낸 것이다. 당시 공개된 사진들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이라크전 반전여론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법무부 감찰 보고서 공개는 훨씬 어려웠다. 법무부는 해당 정보가 합당한 기밀 정보이며, CIA 활동의 근거와 방법은 공개하지 않는 CIA 관련법 조항을 들어 공개 예외문서임을 주장했다.
그녀는 컬럼비아저널리즘리뷰와 인터뷰에서 "그 법조항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만일 정부측 주장처럼 CIA가 고문을 자행하지 않았다면, 이 문서가 공개되더라도 CIA 활동 근거와 방법은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고 전했다.
NYT는 "ACLU와 관련 법률회사 변호사들은 이 소송 준비에 약 1만 시간을 들였으며, 뉴욕 지방 법원에 낸 재정신청은 100건, 정식 변론만 12차례 이뤄졌다"고 그 길고 긴 여정을 소개했다.
암리트 싱은 만모한 싱 총리의 세 딸 중 막내로 자매들 모두 비정치 분야에 종사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큰 언니는 인도 뉴 델리 대학 역사학과 교수이며, 둘째 언니는 인도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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